오늘 설교

[수요설교] "사도신경(11) - 서로 교통하는 것"(행 4:32~35)

소리유리 2024. 10.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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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의 가운데 수요일입니다. 

주일 이후 수요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신앙을 점검하고 적용했으면 합니다. 

사도신경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습으로 시작해 볼까요?

첫 시간에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 이야기,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네 번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여섯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일곱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승천과 우편에 앉아계심,

여덟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아홉 번째 시간은 성령 하나님, 

번째 시간은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한 번째 시간으로 '성도의 교통'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사도신경 본문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성경 본문은 사도행전 4장 32~35절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

성도는 바로 우리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교통'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오고 감. 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음”이라고 합니다.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교제'로 번역했습니다.

교제라는 말은 '서로 사귀어 가깝게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교제'라는 말보다 '교통'이라는 말이 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냥 가깝게 지내는 정도가 아닌 '서로 오고 가고, 주고받는 것!'

영어는 'communion'로 '영적 교감, 공유, 공유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도가 교감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 공유된 그 상태를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고백에 이어 교회에 있는 성도들의 '교통, 교제, 교감, 공유'를 믿고 행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실망, 부정적인 인식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교회 자체보다는 성도들과의 교제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게 도리어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믿고' 우리는 또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혼자서 신앙생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 즉 우리는 '서로 교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서로 교통 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리스도인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떻게 한마음, 한 뜻이 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마음과 뜻을 모읍니다. 

하지만 곧 분열이 일어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 뜻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 '나와 우리'가 한 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인간은 소유에 대한 강한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서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의 소유를 주장하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교통에 공유의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합니다.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청지기'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 남의 것을 대신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것을 대신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자들이 '청지기'입니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기에 서로의 필요에 따라 주고받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35절을 보겠습니다.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라고 합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것, 공유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 45절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초대 교회 공동체는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얼마 되지 않아 일이 발생합니다. 

사도행전 5장 1~5절입니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 

소유를 팔아 전부인양 사도들의 발 앞에 두지만 실상은 얼마를 감춥니다

이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진 않겠습니다. 

오늘은 '얼마를 감추매'에 초점을 두겠습니다. 

 

그 의도, 목적이 무엇일까요?

감추는 것은 한 마디로 아깝기 때문입니다. 

아깝다는 것은 그 소유의 소유권이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주 어려운 부분입니다. 

내용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의 어려움'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그렇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유권을 포기하고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정확히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소유권이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청지기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이 선행되어야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삶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35절입니다.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소유를 나눌 때에 기준이 대부분은 '나'입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무엇이 필요한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6~37절입니다.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비유를 보면 율법 교사는 이웃의 기준을 내가 생각하는 이웃에 둡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안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의 기준을 달리합니다. 

'누가 이웃인가?' 

내 기준에서 이웃이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이 생각하는 기준입니다.

즉 이웃의 기준에서 자신의 필요를 채워준 사람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은 상대방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나누는 것,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피곤한 일입니다. 

내가 여유가 생기고, 할 마음이 들 때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이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의 사람들의 필요를 잘 살펴보겠습니다. 

청지기로 하나님의 것을 잘 사용하겠습니다. 

교통, 교제, 공유, 교감하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아주 어려운 실천의 고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야고보서 2장 17, 18절을 보겠습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은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닌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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