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주일 설교] "사사(9) 입다(1) - 장관과 머리" (삿 11:4~10)

소리유리 2024. 10. 1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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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입니다. 

활동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많은 활동이 있길 기대합니다. 

 

사사들의 이야기를 주일마다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사사는 '입다'입니다. 

본문은 사사기 11장 4절~11절입니다.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입다'는 많은 성도들에게 익숙한 사사는 아닙니다. 

아마도 기억한다면 '입다의 서원'에 대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많이 알려진 입다의 서원은 다음 주에 살펴보고 오늘은 입다의 등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 살펴본 적사사 아비멜렉 이후에 소사사라고 하는 '돌라'와 '야일'이 등장합니다.

소사사라는 말은 기록된 양이 아주 적은 사사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입다가 등장합니다.  

사사기 10장 6~9절을 보겠습니다.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다시'가 또 등장합니다.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게다가 우상도 너무나 많습니다. 

'바알들,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선의 신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호와를 버리지 않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지 않고 동시에 여러 신들을 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여러 신들과 함께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심각하게 생각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십니다. 

18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합니다. 

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와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족속과 싸움으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해졌음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부르짖을 때에 사사를 보내 구원하셨지만 다시 범죄 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입니다. 

10장 13, 14절을 보겠습니다.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실 정도입니다. 

너희가 택한 신에게 부르짖고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본격적으로 입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0장 17, 18절입니다.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치고 이스라엘 자손도 미스바에 진 쳤다고 나옵니다. 
원어를 보면 암몬은 무기를 들고 전쟁하기 위해서 모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냥 모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암몬은 리더를 중심으로 잘 응집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은 리더 없이 그냥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바로 지금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입다'입니다.

1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그는 먼저 큰 용사입니다.

능력은 뛰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기생이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쫓겨난 사람입니다.

돕 땅에 거주하며 잡류를 모으고 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입다의 어미는 일반 창녀로 보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아들이 아닙니다. 

아마도 입다의 어미는 오다가다 만난 화류계 여인으로 추측됩니다.

 

출신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큰 용사로 불릴 만큼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문날 정도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몰려가서 그를 초빙할 정도로 유명해져 있습니다. 

11장 4~6절입니다.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까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갑니다.

직접 가서 그를 설득하려고 갑니다.

예전에는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사사를 보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렇게 해결하는 자신들도 뭔가 찜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10장 18절에서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고 말하지만 11장 6절에서는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고 말합니다.

'머리'와 '장관'은 원어를 살펴보더라도 다릅니다. 
장관은 일반적으로 지도자라기보다는 전쟁터에서 사령관이 되어달라는 의미입니다. 

입다의 능력은 인정해도 그들의 머리가 되는 것은 싫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령관 정도면 입다가 승낙하겠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입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것에 한이 맺혀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도리어 호통을 칩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금방 말을 바꿉니다. 

8절입니다.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장관에서 머리로 바뀝니다.

입다는 이러한 새로운 제안에 만족한 듯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9절입니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입다는 '여호와'를 언급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이라는 조건을 말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기면 너희 머리가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도 재미있습니다. 

10절입니다.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장로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여호와는 우리의 증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입다와 길르앗 장로들이 함께 백성들 앞에 갑니다.

그리고 입다를 머리와 장관으로 삼고, 입다가 미스바에서 장로들에게 한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습니다. 

재밌다는 것은 여기서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끔 저는 '거룩하다'는 말을 비꼬는 말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많이 거론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합니다. 

비꼬는 경우는 말과 행동, 겉과 속이 다른 경우를 말합니다. 


오늘 대화를 보면 입다나 장로들이나 거룩해 보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장로들은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총잡이를 찾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자신의 협상의 유리한 점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용합니다. 

이 부분을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여기에 주를 달아 놓으셨다면 ‘놀고 있다’ 일 것입니다. 이 대목이 사사기의 전 기록의 비극인 것입니다.”

정말 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만 그들에게 정작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여러 우상신을 섬깁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지만 진정한 회개의 모습은 없습니다. 

물론 10장 15,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 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회개를 하는 이스라엘 자손이지만 조건적 회개입니다. 

'범죄 하였사오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필요한 '회개'입니다. 

 

그 가운데 그들은 말끝마다 '여호와'를 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합니다. 

여호와가 진짜 등장하는 곳은 11장 29절에 가서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 부분입니다.

사실 입다는 사사로 쓰임을 받지만 이전의 사사와는 그 등장이 다릅니다.

처음에 그의 등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그의 행동도 사사로서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반복된 범죄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회개가 '조건적 회개'였음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집어넣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 생각, 행동에 하나님, 여호와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입다와 장로들의 모습!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거룩한 '척'하지만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입니다.

자신들이 죽게 생겼기 때문에 그동안 무시하고 쫓아낸 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입다는 장관이 아닌 머리가 되려고 하고 나중에 그들이 다른 말 못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등장시킵니다. 

이렇게 그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 큰 죄악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볼 입다의 모습에서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다른 이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모순적인 삶!

'입다와 장로들 그리고 우리들, 나'입니다. 


여기에 더욱더 어이없는 것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입다와 장로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의 말씀을 입다, 장로들 그리고 내게 적용해야 합니다.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만 하는 거룩, 경건이 아닌 삶에서 보이는 진정한 거룩과 경건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열심히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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