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사도신경(10) - 거룩한 공회인 교회"(엡 1:20~23)

소리유리 2024. 10.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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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의 가운데 수요일입니다. 

주일 이후 수요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신앙을 점검하고 적용했으면 합니다. 

사도신경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습으로 시작해 볼까요?

첫 시간에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 이야기,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네 번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여섯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일곱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승천과 우편에 앉아계심,

여덟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아홉 번째 시간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열 번째 시간으로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신경 본문입니다. 

 

“거룩한 공회와”

 

오늘 성경 본문은 에베소서 1장 20~23절입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지난주 '성령을 믿사오며'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나오고 마지막에 '믿사옵니다'로 사도신경이 끝납니다.

즉 오늘 함께 나눌 사도신경의 본문을 서술어와 같이 이야기하면 “거룩한 공회를 믿사옵나이다”입니다.

거룩한 공회는 교회를 말합니다.

즉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교회를 믿는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교회를 믿음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 

그것이 뭐 중요한가?

그냥 '아멘'하면 되지!'

 

의미를 알고 암송해야 합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것 즉 교회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을 좀 어렵게 한다면 '교회의 성질, 정치, 권세 등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편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마음대로 빼고 넣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교회임을 믿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 대해 할 말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적으로도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혹 어떤 이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괜찮은데 교회는 가기 싫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리더의 자리에 있는 교회가 싫다.

교회에 가면 자기들끼리만 잘 뭉치고, 대형교회만 추구하고... 등등

그런 모습들이 싫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나도 그 가운데서 교회를 향해 비판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고, 하나님은 믿는데 교회는 싫다!'라는 말은 아마도 많은 이들의 공통된 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들 때문입니다.  

교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 전제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의미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히브리어 카할이라는 단어가 교회입니다.

그 단어의 의미는 '부름 받은'이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시나고게'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에클레시아'가 있습니다.

'시나고게'는 '함께 모아진'이라는 의미고 '에클레시아'는 '불러냄을 받은 이'란 의미입니다.

공통적으로 '부름, 불러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회중'이라는 의미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이 모여진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기서 그 부르신 자들의 모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싫어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그 문제는 부름을 받은 자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들의 모습이 부정적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싫어서 교회가 싫다'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공회, 교회를 믿는 것은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한 권한, 성질 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르신 자들의 부정적인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점들로 인해 교회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임과 개개인 사람의 문제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불신자들로서는 참가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임, 공동체를 위해 더 조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 즉 교회를 믿는 것,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것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조직신학 교회론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잘 다루어줍니다.

오늘은 그것을 다 다루기는 힘들고 교회의 교회 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교회의 표지 즉 참 교회를 구별하는 3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말씀전파'와 '성례'와 '권징'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가장 중요한 표지가 '말씀전파'입니다.

올바른 말씀전파가 제대로 되어야 교회입니다. 

 

열왕기상 225절을 볼까요?

 

5   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악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선지자 44백 명쯤을 모으고 물어봅니다.

이 본문을 보고 '아합이 이제 하나님께 돌아섰나? 여호사밧이라는 선한 왕과 사돈지간을 맺더니 변했나?'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지켜보면 아닙니다.

 

선지자 44백 명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아람과 싸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라고 말해줍니다.

 

400명이 한결같이 대답했는데 여호사밧은 왠지 미심쩍었나 봅니다.

그는 묻습니다.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아합은 찜찜하게 대답합니다.

열왕기상 22장 8절입니다.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참 재미있는 구절입니다.

미가야라는 사람이 있어서 물을 수는 있는데 나에 대해 길한 일을 말하지 않고 저주만 말한다.

그래서 내가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아합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길한 내용만을 원하는 왕과 그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왕이 원하는 내용만 말하는 선지자들!

이러한 아합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이 문제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는 말을 들어야 속이 시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더 웃기게 흘러갑니다.

13절입니다. 

 

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합이 원하고 다른 선지자들의 말이 다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믿어야 합니다. 

이제 남겨진 문제는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표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인 말씀전파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물론 이로 인해 교회 자체를 믿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기관입니다. 

문제는 아합에게 길한 이야기만 하는 선지자와 길한 이야기만 찾는 아합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는 목회자와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은 성도입니다. 

 

현대 교회에서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케팅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 비슷한 구매가치를 교환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는 사람의 구미에 맞춰주어야 합니다.

현대 교회가 마케팅을 하는 그 행위는 선지자와 목회자, 아합과 성도가 유사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하겠다고 하면서 아합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이거 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은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을 파는, 이용하는 세일즈맨의 대표 시드기야가 나와서 미가야의 빰을 치며 고객의 마음, 즉 아합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줍니다.

 

말씀의 참된 전파가 아주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빠지면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그다음 책임은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는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파해야만 합니다. 

또한 성도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설교자와 성도가 모여야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례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이야기합니다.

성례가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이 너무나 간단하게 아무런 감동 없이 이뤄질 때가 많은데 이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기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번째 부분은 권징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문제는 권징입니다.

교회,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권징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케팅 교회에 있어서 가장 하지 않는 부분이 권징입니다. 

이것도 다음 기회에 더 깊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공회 즉 교회를 믿습니다'의 고백과 교회의 온전한 말씀전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회 자체를 부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의 표지 중에 특히 '말씀선포'가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먼저 설교자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아합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성도가 되지 않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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