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제자와 약속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데 비자 문제로 잠시 나왔다고 한다.
아침 산책을 뒤로하고 집에서 대기하다가 나간다.
홍대에서 만나 점심을 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러 번 말했듯이 연남동에 살지만 맛집을 모른다.
한식은 와서 많이 먹었다고...
돈가스 좋아한다는 말에 자주 가는 집 근처 '카츠토랑'에 간다.
사람이 많다.
벽을 보고 나란히 앉는 자리밖에 없다.
대화하기는 불편하다.
맛은 좋다.
인도네시아에서 비행기 타고 온 선물세트(?)를 받는다.
지난번 받은 폼피아 비누가 좋다고 말했더니 이번에 또 사 왔다.
둘째 아토피 전용비누가 될 듯하다.
다음부터는 굳이 선물 사 오지 말고 비누만 가지고 오라는 이상한 말과 함께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돈가스를 잘 먹고 빵과 음료를 섭취하러 잘 아는 상암동 빵집을 간다.
'더브래드팬트리'
빵 몇 개와 음료를 시킨다.
대화가 시작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내 사정은 진작에 알고 있다.
주된 이야기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로 진행된다.
부정적 이야기가 너무 많다.
정상적인 교회를 이야기하며 한국에 들어오면 같이 만들어보자고 말을 해 본다.
우리나라 기독교 비율이 점점 줄고 있다.
높을 때는 24%까지 올라갔지만 작년은 15%라고 한다.
청년은 5%이하로 보고 있다.
가장 많이 성도수가 줄어든 지역은 서울이라고 한다.
이러한 내용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야기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쯧쯧'
200% 공감하고 동의한다.
이런 상태면 10년 아니 5년 뒤는 절벽에서 떨어진 바닥이 된다.
개혁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개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개혁을 필요로 생각하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좋은 교회를 꿈꾸는 사람이 좋은 교회를 만든다.
고쳐야 할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그 지적한 것을 고친다.
누군가를 기대하고 있는 모두가 나 외의 다른 사람은 바라 보지만 정작 해야 할 사람이 나인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모든사람’(Everybody), ‘어떤사람’(Somebody), ‘누구라도’ (Anybody), ‘아무도’(Nobody)라는 이름의 네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생겼고 ‘모든사람’이 그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다.
하지만 ‘모든사람’은 ‘어떤사람’이 그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어떤사람’은 화가 났다.
왜냐하면 이 일은 본래 ‘모든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사람’은 ‘누구라도’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아무도’ ‘모든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몰랐다.
이 일은 ‘모든사람’이 ‘어떤사람’을 비난하고, 애초에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일을 ‘아무도’하지 않음으로써 끝이 났다.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이 네 사람은 여전히 말다툼을 하고 있었고, 그 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어떤 사람이 했으면 하는 일!
개혁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해야 한다.
모두가 나설 기회를 만들어 함께 할 장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혀를 차며 '그럴 수밖에... 쯧쯧'하며 손을 놓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많은 생각과 결심, 고민과 정리가 함께 움직인다.
많은 지혜와 사람이 고파진다.
... 오랜만에 만나 생각을 공유한 제자에게 고맙다.
인도네시아로 가기 전에 다시 보기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