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부활주일설교] "부활 그 이후, 하나님과의 사귐"(갈 2:20)

소리유리 2024. 3. 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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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주 기쁜 날입니다. 

 

나의 죄를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내 죄가 사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기쁨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이 여기서 끝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그다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를 알고 실행해야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합니다. 

왜?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너무나 유명한 구절로 많은 성도들이 암송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씩 살펴볼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나 대신 예수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으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상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1서 11, 12절입니다.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기쁨에서 멈춘다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라는 사실에서만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으로 나타나는 결과들이 있어야 합니다. 

나타나는 가장 큰 결과 중에 하나는 바로 살아가는 목적의 변화입니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게 나는 항복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살아가는 목적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내 모든 기준과 가치, 세계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 기준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기준, 가치, 세계관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드러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내 안의 그리스도와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부활 이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1서 3절입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부활 그 이후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순간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고 또한 이는 그분과의 사귐을 위해서입니다.

그 사귐의 시작으로 바로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하나님과 사귐을 이야기해 볼까요? 

사귐, 코이노이아라는 말에는 동반자, 파트너란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반자,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죠. 
즉 하나님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추구하고 계시는 목표나 목적이 나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맞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분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어떤가요?

나의 관심사? 그분의 관심사?

따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요?

 

그분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는 않는가요?
그분과의 사귐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입니다.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평생의 반려자가, 부인이 남편이,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고 서로가 원하는 것도 알지 못하고 서로 살아가는 목표가 다르다면 정말 불행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귐은 지속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지속적인 사귐이 없다면 그 사귐은 식어버립니다.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성 간의 문제를 이야기해 볼까요? 

서로 사귀다가 남자가 군대에 가면 서로가 힘들어집니다. 
서로 떨어져 있고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주 보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야 사귐이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사귐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사귐은 점점 남남처럼 멀어져 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자주 하나님과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지내야 합니다. 
기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순간순간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 이것저것 해 주십시오'라고 외치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 모두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그 사귐의 깊이가, 단계가 올라가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서로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것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한 계단을 같이 오른 것이다. 

이제부터 더 올라갈 계단이 많다. 

사랑의 완성을 향해 더 올라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좋다고 죽으면 못 살 것처럼 그러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깊은 사귐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합니다.

아니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제자리에 맴도는 것이 아니라 뒤로 후퇴하고 맙니다. 

사귄다는 것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결국 그분을 닮게 만듭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하죠.

그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많이 생각하다 보면 닮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니스트라는 한 소년이 자신이 사는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 있었고 그 얼굴을 닮은 훌륭한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전설을 듣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바로 그 큰 바위 얼굴이 아닐까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다가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한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그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자꾸 보고 생각하고 추구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 큰 바위 얼굴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일부러 거룩하게 보이려고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게 진행되고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되는 결과입니다. 

사귐이 깊어지고 있는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예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그 말을 통해 내 사귐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다는 것! 

하나님과 내가 잘 사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부활 그 이후에 이러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부활주일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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