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구원, 기도응답, 승리, 사죄의 확신'을 말씀드렸고 오늘은 마지막 주제 '인도의 확신'을 설교합니다.
확신은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확신의 근거가 나에게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정 지으신 것에 대해 내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인도의 확신'도 그렇습니다.
'인도'라는 말은 '이끌어 지도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도 꼭 붙잡고 이끌어 지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인도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인도의 확신'이라는 것은 인도받는 내가 어떻게 노력해야 확신할 수 있을까에 있지 않습니다.
인도하는 쪽에서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절대로 손을 놓지 않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해 주겠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제 고민할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다른 부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도의 확신'은 칼빈주의 5대 교리 중에서 5번째 '성도의 견인'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 자료가 있어 소개합니다.
"견인(堅忍)이란 "견고하게 붙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인내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아이는 자기가 아버지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상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더욱 굳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견인은 그래서 안심이다.
하나님은 일단 선택한 성도는 놓았다 붙들었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를 끝날까지 계속해서 붙잡고, 믿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견고하게 붙드는 것을 아버지와 아이에 비유합니다.
아이가 아무리 꽉 붙잡고 있어도 놓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굳게 붙잡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혹 실수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이상 취소하지 않습니다.
끝날까지 계속해서 붙잡고 이끌어 주십니다.
심지어 손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인도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이 붙잡고 계십니다.
이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을 전제로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잠언 3장 5, 6절입니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께 인도함 받는 것은 확실합니다.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고민은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고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참 말을 듣지 않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 신뢰해라!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두 문장이 비교됩니다.
우리가 내 명철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적하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 신뢰하라고 합니다.
마음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 신뢰해야 하는데 나의 명철, 경험 등 나를 우선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끌고 지도하시는데 내가 듣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떼를 씁니다.
하나님의 방법 보다 내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공동번역 개정판은 3장 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5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믿어라. 잘난 체하지 말고
'잘난 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잘난 체를?
내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 잘난 체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방법대로 사는 것이 바로 잘난 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긴급한 일이 횡포를 부려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심지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6절입니다.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범사는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입니다.
인정하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라는 말입니다.
네 길을 지도하신다는 것은 그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지도해 주시는 그 길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영적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로마서 7장 22~25절입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인도하실까?
그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전에도 살펴보았지만 말씀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8, 39절을 보겠습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민처럼 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의뢰해야 하는데 자꾸 내 명철을 의지하는 영적싸움입니다.
범사에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고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싸움입니다.
인도의 확신을 설교하면서 정답을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인도의 확신은 이끌어 주시는 분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내 명철을 버리는 것! 내 욕심을 버리는 것! 죄의 법을 버리는 것!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순종하느냐의 싸움!
그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내게 잘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내 안에 있는 죄의 법이 하나님의 법 아래 무릎을 꿇는 영적싸움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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