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초코파이 情"

소리유리 2024. 2. 26. 17:48
728x90
반응형

 

오늘은 동네 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정기적으로 가는 날이다. 

9시 30분쯤 도착했다. 

사람이 많다. 엄청 많다.

첫째 학원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며 순서를 보다가 문득 안내문을 본다. 

 

상담도 진료, 검사결과만 들어도 진료, 처방전 없어도 진료임을 안내한다. 

전화 상담, 통화, 대리처방이 불가함을 알린다. 

많은 환자들이 문의하는 것 같다.

당연한 안내이다. 

그런데 그 밑에 있는 글에서 쓴 사람의 감정이 느껴진다. 

 

'원장님은 절대 당신의 동네 친구가 아닙니다!'

'매너/에티켓/예의를 제발 지키십시오!'

'당신의 언행/참모습 정확히 다 기억합니다!'

'전화로 연결 절대 어렵습니다!'

'문의 있으시면 직접 오셔서 접수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물론 나는 병원, 원장에 대한 불만은 없다. 

우리 가족에게 친절한 곳이다. 

그 밑에 또 이어서 글이 이어진다. 

 

'진료비 나옵니다. 수납하시고 가십시오'

'곧바로 가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음... 뭔가 좀 이상하다. 

윗글을 읽고 나서인지 왠지 강압적인 느낌이 있다. 

느낌표 하나에서도 감정이 느껴진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인데 왠지 명령으로 느껴진다. 

'곧바로 가지 마시고 진료비 수납하고 가세요'라고 말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병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우리 집은 단골이다. 

부모님과 나, 형님까지 이 병원을 다닌다. 

친절한 원장님이다. 

결과도 전화로 알려주시기도 하고 어머니가 아프실 때는 먼저 묻기도 하신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귀찮아지고 불친절해졌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상황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맨 위에 있는 문구에서 보듯이 상담만 받고 진료비를 내야 하느냐 따지는 사람도 있고

진료를 받지만 처방을 안 받았는데 진료비 받냐고 화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화로 처방전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시로 전화해서 원장을 주치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처음의 친절함이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되고 그 친절함 이상의 것을 바라게 된다.

별의별 환자들이 다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진상환자들... 

 

많은 진상환자들로 인해 처음에 보였던 친절함은 이제 보여선 안 되고 사무적으로 변하게 된다.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고 말로 되지 않으면 안내를 붙이게 된다.

그리고 그 안내에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 

 

안내문을 좀 더 순화할 수 있을 텐데... 

아.. 그리면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듣지 않아서 그렇게 했나? 

진상환자, 병원... 둘 중 누구 편을 들고 싶지 않다. 

그냥 안내문 하나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참 힘들일이다. 

착하게 살면 우습게 보고 이용하려 하고 딱 선을 지키면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사람이 된다. 

서로의 필요만 채워주면 된다는 차가운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는 의사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그래 그것이 맞는 사회다. 

더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다. 

다 맞고 옳다. 

 

하지만 사람보다 AI가 대세인 시대에 이젠 사람의 정을 느끼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진상환자 그리고 그에 대한 감정적인 안내문을 보며 그냥 정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이제 정은 초코파이에서만 보는 단어가 되는 것 같다. 

 

병원에서 무슨 정을... 

요즘 별 생각을 다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 아직도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첫째 먼저 데려다줘야겠다. 

LIST

'오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은퇴"  (0) 2024.03.05
"양심(良心)"  (0) 2024.03.02
"돌발선수? 돌발변수(突發變數)"  (0) 2024.02.25
"나에게 산책은..."  (0) 2024.02.19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0)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