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사도신경(9) - 성령을 믿사오며" (요 14:25, 26)

소리유리 2024. 10. 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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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하며 분주함 가운데 잠시의 쉼과 평안이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사도신경을 살펴봅니다. 

복습으로 시작해 볼까요?

첫 시간에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 이야기,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네 번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여섯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일곱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승천과 우편에 앉아계심,

여덟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시간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사도신경 본문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성경본문은 요한복음 14장 25, 26절입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좀 전에 말한 대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부분은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예전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설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믿사오며'가 끝입니다. 

그래서 가장 생각없이 암송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도신경에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있다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합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내가 했다고?'라고 말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어렵기도 하고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선 명확하게 이미지가 잡히지만 성령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구체적인, 즉 양극단의 생각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성령 하나님 즉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기본전제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의 고백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가장 기본인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를 기억하며 살펴보겠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사도신경은 암송하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또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들어간 찬양 가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특정한 찬양을 말씀드려서 그렇지만 몇 곡만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불길'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후렴 부분은 이런 가사가 반복됩니다.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온 천하 세계만방에 퍼치자 성령의 불길"

 

'성령의 불길, 성령의 불'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불길, 하나님 불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불길, 하나님 불이 무엇일까요?  

이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부르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잘하지 못합니다. 

 

또한 청년들이 좋아하는 찬양 중에는 '성령의 불타는 교회'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성령의 불타는 교회 성령의 불꽃 임하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불타는 교회, 성령의 불꽃을 설명하라고 하면 잘하지 못합니다. 

 

설명한다면 대부분 얼정적인 뜨거운 교회, 역동적인 교회 혹 은사가 많은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찬양과 함께 성령 하나님을 많이 언급할 때는 기도회 때입니다. 

기도회가 뜨겁게 되기 위해 성령님을 찾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소리로 기도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뛰기도 하고 뭔가 화끈(?)한 기도회를 연상합니다.  

그래서 기도회 이름 앞에 '성령'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성령 집회, 성령 기도회, 성령충만기도회' 등입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성령 하나님을 하나의 은사, 파워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성령 받으라고 이야기할 때도 마치 어떤 '힘, 능력, 은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실 것임을 말하고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하나님을 마음대로 받고 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찬양하면 아주 이상한 찬양이 됩니다. 

 

'하나님 받으라, 하나님 받으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물건도 아니고...

성령님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이란 인식보다는 뭔가 특별한 힘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한 이적과 기적을 상상합니다. 

그런 상상 아래서 성령 하나님의 올바른 인식을 갖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실까요?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만지고 볼 수는 없지만, 성령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이야기합니다.

 

‘성령은 찾고 말하고 증언하고 명령하고 계시하고 애쓰고 창조하고 중보 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신다’

오늘 읽은 본문 요한복음 14장 25, 26절을 보겠습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즉 우리가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죄를 알게 하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하고, 죄를 짓지 않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죄를 지으면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비인격적이신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가장 큰 것 중에 하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힘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체험을 중시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을 중요시합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주술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영적인 존재입니다. 
거룩한 영, 호흡이라는 의미로 창조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실제로 역사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내게 특별한 능력이 발현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생각합니다.

성령강림 사건을 생각하며 이적과 기적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오셨고 이제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만 할게 아니라 이제는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 하나님이 오시면 막 뛰고 뭔가 뜨겁고, 방언도 하고 이적과 기적 등을 행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증인이 되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임한 증인들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그 증인들 어떻게 되나요?

그냥 익숙한 말로 하면 '성령을 아주 가득가득 받은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고 고난을 받습니다.

죽임을 당합니다. 

성령을 받았고 충만한 사람들인데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 당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더 무서워해서 사람들 앞에 당당해집니다.


성령 충만을 어떤 특별한 체험 그리고 한 순간에 반짝거리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고 말씀을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물론 이적과 기적, 특별한 은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더욱 중요한 것이 이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믿는다는 고백은 날마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함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행은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전적으로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이를 격한 말로 '지배바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맏는다는 고백은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고,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날마다 묵상하고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 속에 '지금 내가 나 자신을 버리고 성령님과 늘 동행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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