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하고 산책을 나가려 창밖을 본다.
어?
눈이 쏟아지고 있다.
내리는 것이 아닌 쏟아진다.
한 마디로 폭설이다.
눈이 잦아지길 잠시 기다려본다.
폭설이 금방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눈이 세차게 온다.
차들이 다들 속도를 줄인다.
제설차량이 옆에 지나가며 염화칼슘을 차에 마구 쏜다.
오늘 아이들 학원시간이 제각각이다.
오늘은 완전 김기사다.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주고... 대기하고 다시 데려다주고...
둘째 학원이 신촌 쪽에 있다.
차가 아닌 걸어서 데리러 간다.
경의선숲길로 해서 가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눈은 그쳤지만 경의선숲길이 온통 눈밭이다.
... 폭설!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내리는 눈이란 말이다.
다른 의미의 폭설도 있다.
'난폭하게 말함'이라는 의미의 폭설이다.
몹시 거칠고 사나운 것이 난폭이다.
즉 몹시 거칠고 사납게 말하는 것이 '폭설'(暴說)이다.
요즘에 몹시 거칠고 사나운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폭설들이 난무한다.
교회에서 하지도 들리지도 말아야 할 폭설들...
그리고 그 상황, 영상이 인터넷에 배포된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많은 폭설들이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을, 목회자를 그리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자극적인 말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시대다.
몹시 거칠고 사납게 말하는 것이 인기를 끌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아니다.
폭설은 그저 오늘 날씨로 끝나야 한다.
눈이 아닌 말의 폭설은 교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폭설이 강단에서 내뱉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폭설을 하는 선지자도 있긴 했다.
예를 들어 말라기에 보면 말을 강하게, 거칠고 사납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오늘 말하는 폭설은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폭설이다.
목적도 전혀 다른 폭설!
오늘 내리는 '폭설'(暴雪)을 보며 '폭설'(暴說)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현대 교회의 개혁은 목회자의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 심정, 뜻을 대변하는 목회자들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세상의 이득을 쫓아 폭설을 내뱉는 목회자는 더 이상 목회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