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사도신경(13)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 (고전 15:51~58)

소리유리 2024. 11. 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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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마다 사도신경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로 사도신경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복습으로 시작합니다.  

 

첫 시간에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 이야기,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네 번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여섯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일곱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승천과 우편에 앉아계심,

여덟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아홉 번째 시간은 성령 하나님, 

 번째 시간은 교회,     

열한 번째 시간은 성도의 교통,  

열두 번째 시간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열세 번째 시간, 마지막으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사도신경 본문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성경본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8절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 사도신경 마지막으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살펴보려 합니다. 

다시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은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노화가 진행되고,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이 말은 가장 매력적인, 치명적인 말입니다. 


오래전 아주 유명한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입니다.

거기서 보면 주인공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여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이 기계의 몸이 되는 것인데, 영원한 생명보다는 진짜 인간이 더 좋다는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영원히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 소망입니다. 
오래 살고 싶고, 아프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는 그러한 것들을 소재로 삼습니다.

 

실제로 아프지 않고 더 오래 살기 위해 수많은 건강식품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이지만 결국은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기에 어떻게든지 죽음을 연장시키려고 합니다.

아바타라는 영화에서는 자신은 병들어도, 몸은 늙어도 자신의 대리로 아바타를 세우고 더 멋진 인생을 삽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백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말입니다. 
너무나 신비롭고 불가능한 말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몸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부활이 있다면 영적인 부활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몸의 부활을 무시하죠.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보면 몸도 부활할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몸의 부활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화장이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은 나중에 부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부활할 때에 예수님 오실 때에 몸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는 상관없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화형 당하면서 순교한 사람들은 아주 곤란해지게 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화형을 당했다고 혹은 화장을 했다고 몸을 살리지 못하실리 없습니다.

혹 부모님을 화장했다고 해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몸이 다시 사는 것 그리고 영원히 사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몸이 다시 살아날 것 그리고 내가 영원히 사는 것!

영원히 산다는 것은 더 이사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끝이 없는 것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위해서는 늘 준비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다시 살아나기 위해 무엇을?

영원히 사는 것을 위해 어떤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죽은 상태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죽기 전에 다시 살아날 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감이 통 잡히지 않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말은 다른 의미입니다. 

즉 내가 다시 살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즉 '믿사옵니다'에 걸맞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 삶 자체가 '다시 살 것, 영원히 살 것'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 52절입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말씀을 믿는다면 내가 이때를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에 걸맞는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57, 58절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특히 58절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내가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믿사옵니다'라고 하는 그것을 위해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은 끝이 아닙니다. 

다시 살 것과 영원히 사는 세상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모순된 모습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 연극에서 나오는 대사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다섯 번째 자살이라는 연극의 한 장면입니다.

동구라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는 다섯 번째 자살을 시도합니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담당의사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둥구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늘 실패합니다.

5번째 자살을 하다가 동구를 구해준 사람은 전도사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 있는 대사입니다. 

의사 : 좋은 신앙생활이었던 것 같군요. 그런데 왜 또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가요?

 

동구 : 난 어느 날인가 내가 믿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어요. 

하늘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셔서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것 같은데, 세상 사람들, 아니 기독교인들을 보아도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것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아요. 

똑같이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 잘 살아보려고 하나님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살고 있어요.
천국, 천국 하면서도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고, 하늘의 보물을 쌓기보다는 지금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기독교인이라면서 왜 죽음을 두려워하죠?

왜 이 땅에서 더 잘 살아보겠다고 도와주어야 될 사람들을 외면하며, 자기 자신들만이 편안한 데로 무관심하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거죠?

나는 과연 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의사 : 물론 동구 씨의 뜻을 이해해요.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에요. 

살다 보면 바쁜 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하나님을 잊게 될 수도...

 

동구 : 그 점이 바로 내가 기독교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의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분이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선적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이미 하나님이 아닌 것이에요. 

모두가 다 형식과 껍데기인 십자가를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니는 예수쟁이 같았어요.
조금씩 흥분하며) 난 하나님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믿는 사람이 없는 하나님이란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고 생각했죠.

 

의사 : 동구 씨, 그건 지나친 속단이요.

 

동구 : (감정이 격하여져서) 그래, 지나친 속단일지 모르지. 그래서 난 죽기로 결심한 거야. 

진리를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는 고통스러워 도무지 살 수가 없었어.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이지? 난 내가 죽는 것만이 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믿었어.

 

의사 : 아니요. 동구 씨의 생각은 잘못이요. 그건 궤변이요. 우린 무슨 이유에서든 자살해서는 안 되는 거요.

 

동구 : 자살! 아니야, 이번엔 자살이 아니라 난 살해당한 거라고!

 

 

의사 : (놀라서) 살해라고?

 

동구 : (더 감정이 격하여진다) 그래, 난 당신들과 같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살해당한 거라고!

 

의사 :...

 

동구 :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움직이며) 그래, 난 살해당했어. 난 처음부터 죽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를 계속해서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거야.

 

의사 : 동구 씨...

 

동구 : (죽음의 사자에게 몰리듯) 아 - 악! 난 살고 싶어. 이 세상에서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단 말이야. 아 - 악! 난, 살고 싶어!. 난, 살고 싶어!

 

의사 : (강하게 동구를 진정시키며) 동구 씨... 

 

동구 : (거의 실신한 상태에서 의사에게 매달려 호소하듯) 선생님, 우린 죽음을 초월해서 살 수는 없는 건가요? 죽음 너머에는 더 살기 좋은 하늘나라가 있다면 우린 이 세상에서 손해 보고 굶주리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의사 :...

 

동구 :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가요? 예? (강하게 절규하듯) 왜요? 왜!

연극 대사이지만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내용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라는 고백대로 살지 못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죽음 너머에 더 좋은 하늘나라, 영원히 사는 그 나라가 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이 세상이 끝이 사람과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 사람의 목적과 방향은 달라야 합니다. 

다르지 않다면 가짜입니다. 

진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까?'

 

사도신경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나그네 삶을 사는 것이고, 내 집이 임시적인 거처임을 이야기합니다. 

 

살다 보니까 이 세상이 끝인 것처럼 살게 되었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늘 우리는 끝이 없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이웃을 위한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당장 손해 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이웃을 위한 것이라면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 삶을 살며 본향인 하늘나라를 늘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많은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고백은 나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성도입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릴 천국을 바라보는 천국백성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 신앙고백을 삶으로 보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 18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신앙고백을 행함으로,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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