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하나님의 광고판" (벧전 2:19, 10)

소리유리 2024. 9. 1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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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도 사도신경 강해를 하지 않고 다른 부분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연휴 기간에 가족, 친지, 친구 등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가운데 나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전서 2장 9, 10절입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오늘 살펴볼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축복송이라는 찬양의 가사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서로 축복하는 익숙한 가사 아니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축복송의 가사로 가볍게만 생각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서로 축복해 주는 것이 기뻐 이 말씀으로 찬양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할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은 이스라엘을 연상시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10절에서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라는 말씀을 보면 딱 이스라엘을 백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을 보며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과 이적을 직접 체험합니다.

하지만 금방 범죄 합니다. 

또한 그러한 모습을 반복합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많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면, 직접 만나를 먹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본다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다면 하나님을 정말 잘 믿을 수 있을 텐데'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삭, 야곱, 요셉을 거치는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특히 출애굽을 할 때 주변의 열국들이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심히 좋은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결국 나중에는 멸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곳 그곳은 심히 좋은 땅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 6절을 보겠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해야 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열국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이라는 곳입니까?
에스겔 5장 5절입니다.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예루살렘은 이방인들로 둘러싸인 중심지입니다.

위치적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한가운데에 있는 세계의 중심지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때 그리고 그 중심지에서 사는 그 영향력은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큰 수조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려 신속하게 번지게 하려면 한가운데에 떨어뜨립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세계의 중심지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변 나라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제사장 나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것이 더더욱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 소유된 백성'

오늘 말씀의 초점은 뒷쪽에 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우리는 반드시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보면서 살펴볼까요?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9절 하반절을 보면 ‘이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왜 부족한 나를 택하고, 거지 같은 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고, 흠 있고 거룩하지 못한 자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고아 같은 나를 하나님께서 소유하셔서 아들로 삼아주시고,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다' 보다 '왜 그런 존재로 만들어주셨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는' 다음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보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드신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심'입니다. 
즉 나를 택하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그분을 선포, 선전하기 위해 나를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주변의 많은 나라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이스라엘이 잘 먹고 잘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땅에 들어가 선포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선전물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고물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날 위해 죽으신 그분의 사랑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안다면 이제는 그분의 사랑, 그분의 용서를 널리 널리 전하는 광고물, 선전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랜 전에 출판된 책 중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광고판이다'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좋은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광고판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이러한 때에 더욱 기억해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광고물, 선전물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광고물, 선전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처한 위치와 상황은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선전물로써의 역할은 동일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명절 등 특별한 시기에 더 필요한 자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광고, 선전물로 어떤 모습을 보여야 되는지 생각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광고물, 선전물로 사람들에게 어떤 하나님을 광고하고 있나요?  

심각하게 나의 모습을 생각해야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광고, 홍보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 상품을 정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상품의 본질을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잘 전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맺겠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구약에서 보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우리는 손가락질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이 그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좀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중심지, 한 가운데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많은 나라의 영향을 받는 위치에 들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의 40년 시간을 보내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들은 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나라는 농사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신은 다 농사와 관계된 자연의 신, 풍요의 산, 다산의 신들입니다. 

 

가나안이라는 땅에서 이스라엘만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에 많은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주변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유혹은 너무나 대단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동안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갈 정도로 대단한 유혹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말은 참 좋죠. 

 

하지만 세상에 나가보십시오. 

나와 다릅니다. 

물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그렇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하고는 다릅니다. 

그러한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 원숭이가 숲 속을 헤매다가 드디어 다른 원숭이를 발견하고 반가워합니다.

그런데 웬걸 그 원숭이가 뒤를 돌 때 보니까 그 원숭이는 한 눈 밖에 없었습니다.

놀라기도 했지만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고 있는데 많은 원숭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옵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원숭이들이 다 외눈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상황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외눈 원숭이들이 두 눈 달린 원숭이를 손가락질하며 웃기 시작합니다. 

그 두 눈 달린 정상 원숭이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한 눈을 돌로 찧겨 버리는 슬픈 동화입니다.  

오늘 말씀은 축복송이라고 하지만 이제 선전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래입니다. 

예전에 전쟁을 나가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와 비슷하겠죠.

자신의 두 눈이 정상임을 알고 외눈들 가운데 꿋꿋하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들처럼 한 눈을 없애버리고 그들과 동화되어 살아갈 것인지 지금부터 확실하게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두 눈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들에게 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선전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광고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이 단어를 각인시키셔야 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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