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8) - 후히 드리는 생활"(고후 9:7)

소리유리 2024. 5.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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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 8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매주 말씀드리지만 총 8과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에 4과는 나와 하나님 관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 '하나님의 말씀', '성령', '믿음' 생활입니다. 

뒤에 4과는 나와 이웃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 교제, 증인, 후히 드리는' 생활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8번째 '후히 드리는 생활'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가장 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또는 너무 강조해서 성도들이 가장 듣기 힘든,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목을 보면 단 번에 '헌금하라는 이야기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목을 '후히 드리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헌금 이야기도 하지만 헌금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목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후히'와 '드리는'이 두 단어 다 강조해야 합니다. 

먼저 '후히'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나중에 '드리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히'는 ' 인색하지 않고 넉넉하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색'은 ' 재물 따위를 지나치게 아낌'이라는 뜻이고 '넉넉하다'는 말은 ' 어떤 기준에 충분히 차고도 남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재물 따위를 지나치게 아끼지 않고 어떤 기준에 충분히 차고도 남음이 있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재물 따위를 아끼지 않고 차고도 남음이 있게 드린다는 것은 정말 아주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초점을 '헌금'에만 두면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최고의 가치를 '물질, 돈'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 '후히 드리는 생활'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고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입니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인색함, 억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아끼고,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을 많은 성도들이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 구절을 비그리스도인들은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돈만 좋아해'라고 말입니다. 

모르고 보면 오해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은 '후히 드리는 생활'이라는 말과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후히 드리는 생활'이 이웃과의 관계를 중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가장 힘든 것은 '돈' 때문입니다. 

돈의 막강한 힘!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힘듭니다.

하지만 돈을 사용하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돈이 있으면 외모가 바뀌고, 돈이 있으면 만사형통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돈이 있으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세상이기에 '후히 드리는 생활'이나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는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초점의 문제입니다. 

그저 돈, 헌금에만 초점을 두었기에 오해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소유권'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물에 소유권을 두고 그 소유권을 서로 인정해 줍니다.

소유가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누구 것인가 싸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말 내 것들이 내 것일까? 

그 원주인은 누구일까?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뻔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원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노력?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요? 

생각하고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고? 

그럴 수 있는 그 몸은 어디서 났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그 이성은 누가 준 것인가요?

내가 만약에 로봇을 만들고 일을 시킨다면 그 로봇이 하는 그 모든 일의 소득은 내가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고요? 내가 로봇의 주인이니까요. 

내가 로봇을 만들었고 바로 내 소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봇과 인간을 비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자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에서 비슷합니다.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환경도 하나님 것입니다. 

소유권을 따진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장 하나님의 것을 찾으신다면 법적으로도 우리는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만물을 내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땅, 아파트, 자동차, 스마트폰, 통장 등 내 것이라 주장하는 것들...

다 그것을 만드는 원재료는 다 자연만물에서 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에게서 나옵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용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청지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소유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개념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이거 당신 것이 아니라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청지기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소유권을 들이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하면 그냥 내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후히 드리는 생활'을 생각해 볼까요?

어떻게 '재물 따위를 지나치게 아끼지 않고 어떤 기준에 충분히 차고도 남음이 있게' 드릴 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10억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1억을 어디에 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누구도 싫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생각으로 대단한 선심을 쓰듯이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은 꼭 물질, 돈만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입니다. 

생명, 시간, 은사 등 모든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드리는' 것으로 내가 청지기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후히 드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이웃들에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생각할 것이 바로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헌금을 강조하고, 부흥사가 헌금을 요구하는 것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후히 드려야 합니다. 

사실 헌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교회에서 잘못 가르친 탓이 큽니다. 

아니 목회자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하고 주인이 찾으실 때에 잘 사용하고 드려야 합니다. 

잘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후히 드리는 삶입니다. 

드림으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남겨야 합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들어가서 지금 소유의 문제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 특히 물질에 있어서 따지고 드리지 못하는 가장 많은 경우는 소유의 문제입니다.

내 것을 빼앗기기 싫고 아깝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후히 드려야 한다고 할 때 물질, 돈, 헌금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21절을 보겠습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중요한 것은 바로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보물을 나의 가장 최우선 순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그것의 소유권을 더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소유권이 아닌 청지기를 말해야 합니다. 

내가 청지기로 어떻게 그것을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들을 결산하실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을 보겠습니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후히 드리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청지기임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드리는'이라는 단어는 소유권을 인정한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잠언 3장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재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내가 청지기이기에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낌없이 차고도 넘치도록 드립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용됩니다. 

 

후히 드림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3대 약자가 있습니다. 

구제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이는 헌금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들을 통해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는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소제목을 찾으면 '가난한 성도를 섬기는 연보'입니다.

이웃사랑입니다. 

서로 섬기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즐겨서,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부모와 자녀의 이야기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형제, 자매가 서로 양보하고 서로 필요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줍니다. 

부모 입장에서 그 모습을 보면 뭔가 더해주고 싶습니다. 

 

동생이 달라고 하면 언니는 아까워합니다. 

그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동생이 달라고 하는 언니 것도 사실 부모가 사준 것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내가 준 것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자녀를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동생을 주면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가끔 부모가 자녀에게 간식을 사주고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사줬음에도 아까워 주지 못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내 것이 되었기에 주기 아까워합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주는 자녀를 보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가장 귀하고 비싼 것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것이 없으시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지 조금 느낌이 오시나요?

 

후히 드리는 생활은 내가 청지기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삶입니다. 

'나'와 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청지기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지혜롭게 잘 사용하여 많은 것들을 남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생활지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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