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 7번째 시간입니다.
반복해 말씀드리지만 생활지침은 총 8과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 4과는 나와 하나님 관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 '하나님의 말씀', '성령', '믿음' 생활입니다.
뒤에 4과는 나와 이웃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 교제, 증인, 후히 드리는' 생활입니다.
오늘은 7번째 '증인으로서의 생활'입니다.
중인이라는 말은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증인으로서의 생활이라는 말은 어떤 사실을 생활로 증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어떤 사실'은 '복음'입니다.
문제는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명을 생활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생활지침을 설교하고 있지만 '생활'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담입니다.
특별한 한 순간을 말하지 않습니다.
생활은 '생명이 있는 동안 살아서 경험하고 활동'하는 총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이라는 말은 내가 숨 쉬는 모든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게다가 증인으로 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생활에서 어떤 사실 즉 복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담됩니다.
'굳이 내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 '증인'의 일을 넘겨줍니다.
목회자, 선교사, 교사, 중직 등에게 말입니다.
오늘은 '증인의 생활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까지 오늘 말씀드릴 부분입니다.
증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늘은 6~8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절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할 정도의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암송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오해한다는 말은 문맥을 파악하지 않고 8절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오해를 극단적인 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친구가 심하게 다툽니다.
서로 화난 상태에서 한 친구가 화해하기 위해 묻습니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그러자 대답합니다.
‘돈 없어’라고 아주 무뚝뚝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 장면만 보고 듣습니다.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돈 없어’라는 말만 듣고는 상상을 합니다.
이건 분명히 돈을 빼앗는 상황이야.
경찰에 신고해야지라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지나가는 그 사람이 상황파악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지나가는 사람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아니 더 큰 잘못이죠.
지나가는 사람은 어쩌다가 앞의 말을 못 들었지만 우리는 앞 뒤 문맥을 볼 수 있지만 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8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증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다가서라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주변의 많은 이들도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본문이 어떠한 과정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 하시는 설교 중에 한 부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질문이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일까요?
‘우리가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어디까지 전도해야 합니까?’
이러한 질문의 답변으로 '증인이 돼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6절입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그들은 2절, 10절을 보면 '사도들,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때입니까?'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회복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바로 7, 8절입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7절로 '너희가 알 바 아니요'로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동문서답의 8절을 말씀하십니다.
동문서답이라고 하는 이유는 질문과 답을 요약하면 더 드러납니다.
'언제 우리가 회복됩니까?'
'증인이 돼라!'
이런 이상한 과정 속에서 나온 구절이 바로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자신들은 선택된 민족 즉 선민사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어떤 이들은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시고 선택하셨는가 하는 부분에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기분 상할 만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곧 떠나십니다.
승천하십니다.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물어볼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가장 중요한 질문을 꼭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자신들만의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대상은 바로 선택된 바로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로의 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했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도행전 11장 18절에 가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구원은 이스라엘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닌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자신들은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 아니라 구원은 얻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들의 상황이 언제 회복될 것인가라는 현실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다른 사람은 관심 없습니다.
이방인은 구원도 없는 하찮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성령, 믿음으로 생활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명령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이기적, 자기중심적인 면을 발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회복에 최고의 관심사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보다는 내가 누려야 할 것들에 더 중심이 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옥의 불쑤시개로 생각한 이방인들에게 가서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들 앞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명령이 주어집니다.
내 주변의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는 것은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 우리들에게는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알아서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을 보겠습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우리가 염려하고 구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입니다.
'증인이 돼라'는 것은 '그런즉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3장 15절을 보겠습니다.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제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로 보여주십시오.
생활에서 보여주면 주변의 사람들이 내게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십시오.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것이 증인으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오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요설교]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8) - 후히 드리는 생활"(고후 9:7) (0) | 2024.05.22 |
---|---|
[교사 주일 설교] "하박국(5) 그러나!" (합 2:5~20) (0) | 2024.05.18 |
[어버이 주일 설교]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 (출 20:12) (0) | 2024.05.10 |
[수요설교]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6) - 그리스도인의 교제하는 생활"(요일 4:7~11) (0) | 2024.05.08 |
[어린이 주일 설교] "어린아이와 같이" (마 18:1~4) (0) | 2024.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