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로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뜨거워지는 날씨처럼 우리의 신앙도 점점 뜨거운 모습들을 보였으면 합니다.
하박국서 6번째 설교를 합니다.
이제 마지막 장인 3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한 구절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아주 많이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3장 1, 2절입니다.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오늘 본문은 '부흥'이라는 찬양 첫 부분에 낭독되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멋진 목소리로 ‘주여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말하고 ‘부흥’이라는 곡이 시작됩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정말 많은 이들이 부흥을 꿈꾸며 이 찬양을 불렀고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격한 감정으로 혹은 찬양에 깊이 몰두하여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아주 유명한 찬양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에 우리는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 부흥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흥분하게도 만듭니다.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우리의 감정을 돋아주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주제 중 하나가 '부흥'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부흥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많이 사용합니다.
부흥이라는 말은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더라도 부흥이라는 단어는 ‘살다, 재생시키다, 살아있다, 살게 하다, 생명을 주다, 살려두다, 육성하다, 소성시키다, 회복시키다, 생명이 있다, 생명을 유지하다, 유복하게 살다, 영원히 살다, 되살아나다, 생명이나 건강을 회복하다’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이 부흥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일하게 나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그동안 우리에게 감동을 준 그 부흥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하박국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게 되었는가?
그것을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부흥을 외치게 되었는가?
하박국이라는 선지자가 왜 부흥을 외치며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양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느낄 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더욱 깊고 놀라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박국 서를 설교하면서 그동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그는 뜨거운 선지자입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그 울분을 하나님께 터트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은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온갖 악에 대하여 공의를 선포하기 위해 애를 쓴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해나가는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답변에 눈물을 흘리며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할 그 승리의 날을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게 그분의 명을 기다리게 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기에 등장하는 시기오놋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3장 19절을 보아 아마도 수금이 아닐까 하는 추측 합니다.
그래서 칠십인경은 이것을 수금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시기오놋은 ‘방황하다, 흔들리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황홀하다, 도취하다’는 말로 아마도 리듬이 급속도로 변하는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어떤 노래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을 조금은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박국 선지자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극도의 감정을 노래로, 기도로 표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박국 선지자의 감정이 지금 아주 많이 격양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감정이 격양되어 있는가?
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 말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흥이라는 것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감정은 답답함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대한 반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에 민족에 하시고자 하시는 그 일에 대하여 하박국 선지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얼굴이 시뻘게지고 씩씩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런 그가 해답을 찾았습니다.
시기오놋에 맞추어 노래를 격정적으로 부릅니다.
시뻘게진 만큼 하박국 선지자의 감정을 폭발합니다.
그의 감정의 표출을 보겠습니다.
2절입니다.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아마도 하박국 선지자는 두 빰에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이 기도를, 노래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박국 선지자 그는 참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따질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표현도 열정적으로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을 압니다.
즉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자신이 속한 그 나라와 민족이 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면서 자신의 나라와 민족의 부흥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께 대한 소문은 지금까지 살펴본 하박국 선지자를 놀라게 한 이야기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키신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는 놀랐지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부흥케 하옵소서는 원문상 아주 강력하게 요구하는 말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달라는 간구입니다.
죽었던 것을 다시 소생케 해 달라는 그러한 말입니다.
‘수년 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강조하는 것입니다.
환란의 때가 속히 지나가고 속히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그러한 영화가 다시 오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때는 바로 다윗과 솔로몬의 초창기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는 본문은 상당히 짧고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느끼는 그만의 감정이나 생각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하는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때가 바로 하나님의 징벌의 때임을 압니다.
하지만 결국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그날을 알기 때문에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확신을 주셨습니다. 반드시 그날이 옵니다.
그래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그날을 속히 주소서라고 노래하게 됩니다.
결국 올 그 승리의 날을 바라보며,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감정을 추스르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 징벌이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나아가게 할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확신이 옵니다.
부흥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압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부흥이 수년 내에 오길 기도합니다.
우리나라도 부흥할 시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교회가 많이 설립되고 천만 이상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보다 못하다는 비난도 듣습니다.
수많은 비리, 부정, 불의의 모습들이 너무나 쉽게 교회 내에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박국 선지자가 뜨겁게 외치는 부흥에 대한 외침과 갈망이 있습니까?
코로나 이후에 개혁, 회복, 부흥이 외쳐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안전제일주의, 현상태만 유지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중심적 교회는 사라지고 마케팅에 물든 교회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강해설교보다는 예화, 인문학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심판, 죄에 대한 복음의 말씀보다는 긍정의 힘, 복 등을 강조합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부흥을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며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면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부흥을 외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심판의 때에, 징계의 때에 있지만 그의 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실 그날을 바라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흥분하며 격양된 감정을 노래로 표출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실 그날!
하박국 선지자의 시선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현실의 절망적인 상황으로 포기할 것이 아니라 결국 이루실 그날을 바라보는!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박국 선지자는 바라는 것 즉 부흥의 실상을 보며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선지자의 본을 보여줍니다.
그 믿음의 시선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1장에서 보았듯이 하박국 선지자처럼 회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울며 부르짖어도 금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집니다.
이런 거 해봤자 뭐 하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꾸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날을 보지 못하고 자꾸 현실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날을 부흥될 그날을 기대하며 그날로 믿음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날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날을 기다리며 변화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끔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디를 향하여 있습니까?
믿음의 시선으로 그날을 바라보면 부흥을 꿈꾸길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현실은 심판과 징계와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 있을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보며 부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함이 있습니까?
뜨거움이 있습니까?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벅차고 힘드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미래를,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흥을 기대하며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결국 오고야 말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부흥을 계속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올 그날이 수년 내에 나타나길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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