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핑계(3) 사울"(삼상 15:30)

소리유리 2023. 12. 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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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배 시간을 몰라서? 예배 시간이 자주 바뀌지 않으니까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매주 교회 오는 길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지각하는 성도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긴 하지만 결국 그 잘못은 지각하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예배 시간을 지나서 늦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뒤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쳐다볼 때가 있습니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문도 살짝 닫고 뒤쪽의 빈자리에 슬그머니 앉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 민망한 마음도 잠시 그 마음이 싹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아주 반갑게도 나보다 늦게 오는 성도를 발견할 때입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민망함이 싹 가십니다. 이제 불편한 마음 없이 예배에 집중하게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보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서 내가 지각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핑계 댈 것이 생겼을 때에 나는 마치 지각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지각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범죄 하였음에도 핑계를 대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비교해보며 착각을 깨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 본문 사무엘상 15장 30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사울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울을 다윗과 비교하면서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사울은 악신에 들린 나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사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울이라는 사람은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 않을 뿐 아니라 뛰어난 사람입니다. 물론 나쁜 사람, 하나님께서 결국 버린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냥 쉽게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기엔 하나님께서 주시는 반면교사로서 사울의 교훈이 너무 아깝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됩니다. 그러나 왕이 되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왕을 세우시고자 했던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8장 4, 5절입니다.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 말을 들은 사무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왕의 제도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왕의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왕이 있으면 너희에게 이렇게 저렇게 요구할 것이다’라고 말해줍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식적으로 결코 백성들에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까지 이야기해주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막무가내입니다. 


사무엘상 8장 19, 20절입니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의 이야기를 듣고 답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왕이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의 속마음은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보다는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선출된 사울은 백성들이 원하는 왕의 이미지와 잘 부합하는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 1, 2절을 보겠습니다.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그들에게 왕은 자신들을 지켜주고 앞서 싸워줄 사람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크고 준수해 보이는 사울은 왕이 될 만한 외모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무엘상 10장 24절을 보면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불량배들의 불만 섞인 소리가 성경에서 잠시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사울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는 ‘만세’를 외칩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된 사울에 대해 이제 본문을 통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15장 1절부터 봐야 합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22절 하반절에 나오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모님께 어렸을 때 많이 들었습니다. 어려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다만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그렇게 사용하라고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15장을 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5장 1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성경을 읽을 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성입니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상식적으로 봐야 상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는 사무엘의 말이 좀 평범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전하지 않고 앞에 다른 말을 붙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왕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먼저 강조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이 지금 왕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 덕분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이제’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 말은 아무 때나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그러니 이제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그러니 이제 이 글 좀 읽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는 글을 읽으라고 이야기하는데도 읽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즉 이 말은 지금 사울의 상태를 짐작케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처음부터 당신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를 강조하고 그러니 이제는 당신을 왕으로 삼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사울이 사무엘에게 들었던 ‘그러니 이제’라는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혹은 신앙의 선배들이 나를 보며 ‘네가 어떠한 존재인지 아니? 너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돼!’라고 말하고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신중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강한 어조로 사울에게 전합니다. 그 내용은 아말렉을 쳐서 멸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곤한 때를 틈타 뒤에서 약한 자를 친 족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5장 19절에서 그들은 도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중요하게 언급하시는 것은 그들이 그저 이스라엘을 쳤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을 친 것으로, 이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라고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말합니다. 
그냥 ‘아말렉을 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고 해도 될 것을 모든 소유가 어떤 것들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사울이 모든 소유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 명령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완벽하게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것이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전하고 그 말을 들은 사울은 실행에 옮깁니다. 백성을 모으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전쟁의 결과는 금방 나옵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대승을 합니다. 
8절을 보면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발생합니다. 9절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부분에 말씀드렸듯이 사무엘은 사울이 이번만큼은 꼭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세하게 설명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보면 사울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본문을 보면서 사울의 상황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이 본문에서 망가지는가 하는 것을 봐야 합니다. 아니 망가질 정도가 아니라 아주 비참하고, 비굴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주어를 잘 보고 그 내용을 파악해야 합니다. 
  
11절에서 보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온 밤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울을 만나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사무엘에게 고합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뭔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울의 모습은 왜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수밖에 없는가를 자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러 갔더니 사울이 사무엘을 환대합니다. 그리고 사울 스스로 뭔가 찔리는지 선수를 칩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명령을 어긴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무엘은 다 알고 있으면서 말합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라고 말입니다. 사울은 대답합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이야기를 듣고 꾹 참고 차분하게 이야기합니다. 간밤에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를 사울에게 전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었는데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에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였냐고 말합니다. 
  
사울의 대답을 유심히 보십시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좀 전에 주어를 잘 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주어에 신경을 쓰면서 살펴보셨습니까?
주어에 신경을 쓰며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오자 13절에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무엘이 사울에게 양과 소의 소리로 추궁하자 사울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라고 이야기 합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20절에서도 그렇습니다. ‘나는’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라고 말하며 ‘다만 백성이’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자신은 잘했지만 다만 무리가, 백성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는’을 강조하며 나의 잘못 없음을, 하나님께 순종했음을 강조하며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무리가, 백성이’로 주어를 바꾸어서 순종하지 못한 그 주체를 백성에게 둡니다. 
하지만 9절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울과 백성이’ 함께 범죄했습니다. 게다가 사울과 백성이 같이 범죄 하면 그 책임은 왕인 사울이 더 큰 것이고 또한 왕이 그 책임을 당연히 져야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사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잘못이 드러날 때 그 잘못을 남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습니까? 내 주변에 나보다 더 순종하지 않는 사람 또는 내 잘못을 다른 것으로 감추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닮은 면이 있습니다. 잘못을 서로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에 잘못을 지적하면 보통 그것에 가장 잘 맞는 주변 사람을 찾습니다. 내가 아닌 내가 잘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찾습니다. 또한 나도 지적받아 당연하지만 나보다 더 지적받을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또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지만 자신의 잘못은 합리화합니다. 내가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저 사람이 한 것은 범죄고 극악무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면에는 나라는 사람이 모든 것에 중심에 있고 믿음까지도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존재이지 내가 하나님 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여기서 아주 유명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란 말씀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백성과 무리의 핑계를 대는 사울에게 사무엘은 따끔하게 야단을 칩니다. 야단 정도가 아니라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완고한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다른 신에게 물어보고 다른 신을 섬기는 죄라는 것입니다. 
이는 십계명 중에서 중요한 계명을 어기는 아주 큰 범죄입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이 이어집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 말은 사울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입니다.
  
사울은 그제야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24절에서 ‘내가’ 범죄하였다고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겼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범죄는 했지만 이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범죄한 것은 맞지만 백성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이 핑계는 말도 되지 않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이유가 ‘백성이 두려워서’라고 말하는 그 말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울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케 합니다. 

그러한 사울이기에 그 다음에 더 어이없는 말을 합니다. 
25절입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조금 전까지 나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었지만 다만 백성이, 무리가 어겼다고 말하던 사울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에 ‘내가 백성들 때문에 범죄했다. 내 죄를 사하고 함께 돌아가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사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로 말하는 것일까요?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사무엘이 그냥 가려고 하자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고 찢어질 정도로 늘어집니다. 그러면서 사울은 오늘 본문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사울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일에 결석도 자주 하고 십일조도 안 내고 술도 잘 먹고 다른 사람 사기도 치고 도둑질도 하고 가끔 폭력도 행사하지만 교회에서 제 위치와 직분이 있으니까 모범 성도로서 상 주셔야 합니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는 무서운 말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범죄했지만 그래도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작게 여길 만큼 처음에 겸손했던 사울! 왕이 된 후에 자신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제는 자신을 왕으로 삼은 여호와의 말씀보다는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오로지 관심은 자신의 위치입니다. 
  
‘범죄하였을지라도’를 여전히 외치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높여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아말렉 족속은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께 범죄하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그 일을 사울이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곧 그 결과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아말렉 족속 그리고 그 왕인 아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말렉 족속은 진멸 당했고 33절에서 보면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찍어 쪼갠다, 사람을 찍어 쪼갠다는 것은 아주 잔인한 말입니다.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난도질하다, 토막을 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에 이러한 결과를 낳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범죄를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아각을 보면서 가슴을 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자가 어떻게 되는 가를 눈앞에서 보면서 눈물을 뿌리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오로지 자신의 위치에서 지키는 데에 급급했고 자기 범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사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으면 합니다. 
전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사울의 모습에 친근감을 느낍니다. 죄를 범할 때에 합리화시키는 나의 모습…. 참된 회개보다는 나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그동안 쌓아놓은 것을 잃을까 걱정하는 모습….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울처럼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를 외치고 있지는 않는지요? 
‘범죄하였을지라도’를 외치면서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라면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범죄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무릎을 꿇고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다른 사람을 보지 마시고 나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핑계를 대고 이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까?’에 나의 시간과 열정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사울이 하는 핑계가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이가 없을 지 아시겠죠. 우리는 사울과 같은 핑계를 너무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넘기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착각을 깼으면 합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준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더 이상의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핑계를 대는 우리의 의도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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