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회에서 문학의 밤을 많이 하지 않지만 십수 년 전에는 매년 가을이 되면 교회마다 문학의 밤 행사를 했습니다.
문학의 밤 프로그램을 짜면서 꼭 들어가는 것이 콩트였습니다. 이런저런 대본을 많이 써보았지만 가장 쓰기 힘든 대본이 콩트 대본입니다.
한 번은 주제를 ‘동문서답’으로 잡고 대본을 썼습니다. 대화가 엉뚱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자꾸 상식적으로 흘렀습니다. 그래서 쓰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점심 뭐 먹었어?’라는 말에 ‘오백 원이야!’
최소한 이 정도로 엉뚱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자꾸 질문에 맞는 답을 쓰게 됩니다. 이때 동문서답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들으면 보통 그 질문에 맞게 대답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하게 생각하죠. 삶 속에서 벌어지는 상식에 벗어난 답변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는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답변!’ 그 답변이 틀린 것이라면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그 답변이 맞는 것이라면 우리는 좀 더 깊게 그 답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한다면 그리고 그 말이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면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서 ‘동문서답’ 같은 질문과 대답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상식적으로 보지 않고 너무 믿음으로(?) 생각 없이 읽어서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래서 성경공부를 할 때에 말씀에서 ‘전제’를 찾고 ‘상식적’으로 보는 연습을 시킵니다. 생각하며 성경을 읽는 훈련을 하는 것이죠. 성경을 읽으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며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하면서 상식적으로 자세하게’ 보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앞으로 성경을 보는 방법을 조금씩 바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며, 천천히, 자세하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봐야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의도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이 그렇습니다. 그냥 보게 되면 ‘동문서답’의 대화가 아무런 멈춤 없이 그냥 넘어가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동문서답’의 대화 속에 우리가 좀 더 알아야 할 그분의 의도가 있습니다.
앞선 홍해 설교에서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에게 주도권이 있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홍해사건에서 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답변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내가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하며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여호수아 5장 13-15절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바로 전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아주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구약 특히 역사서는 내용을 상상하면서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지금 살펴볼 이 본문을 상상하면 참으로 긴장되는 부분입니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잠시 멈추고 ‘이게 무슨 말이지?’ 그 의미를 찾아야 하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살아오다가 마침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고 이제 여리고로 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많이 긴장한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수차례 등장합니다. 이 말을 다른 의미로 살펴보면 여호수아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고 담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 그동안 지독하게도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제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지도자의 자리는 결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수 있는 자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잔뜩 긴장하며 여리고로 향하고 있는 이 순간에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수아를 가로막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해 있던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급하게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아군이냐? 적군이냐?’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걸작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바로 ‘동문서답’입니다.
칼을 빼어 손에 든 그 사람의 첫 답변은 ‘아니다’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적군도 아니고 아군도 아니라는 말일까요?
지금 전쟁을 앞두고 여러 모로 신경이 예민해진 여호수아에게 ‘아군이냐, 적군이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지하고, 급박하고, 심각한 말에 ‘아니다’라는 이상한 답변은 말장난도 아니고 여호수아를, 그리고 우리를 황당하게 만듭니다. 친구끼리 게임하기 위해 편을 가르면서 ‘너 우리 편 할래? 상대편 할래?’라는 말에 ‘아니다’라고 대답을 한다면 그 친구는 앞으로 혼자 놀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니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이상한 답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욱 이상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에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리고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해 못 했는데 여호수아는 이해했나 봅니다. 동문서답인데 서로 대화가 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하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내용 전부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냥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대화라면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이해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이 본문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잠시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 이상한 부분은 잠시 멈추고 또 등장하는 이상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 살펴본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6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입니다.
5장 15절과 6장 1절이 이어지는 것이 좀 어색합니다.
15절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라고 끝나면 다음에 무슨 말이 이어져야 하는데 6장 1절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6장 2, 3절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5장 15절에서 6장 2절로 이어지면 왠지 더 매끄럽습니다.
5장 15절에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등장했는데 이제 무슨 말을 할까 기다리는데 1절의 내용은 좀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오늘 본문이 일부 소실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는 오늘 본문이 6장 2절과 연관되는 것이고 6장 1절은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냥 연극 대본상의 지문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주장들을 내려놓고 이 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며 이상한 점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 본문을 다른 이야기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김두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김두한의 졸개들이 일본인들과 싸움을 앞두고 대기 중에 있는데 문득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다가옵니다. 졸개들 중에 그래도 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나서서 묻습니다.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쪽 대답이 ‘아니다 나 김두한이야’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질문과 답이 그냥 보기에는 맞지 않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김두한은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조선인, 일본인에 대한 답변을 할 위치가 아닙니다. 게다가 그는 이 싸움의 주인공, 주체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내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밝힐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질문에 ‘나 김두한이야!’ 면 끝나는 것입니다.
위의 비유를 생각하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대답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김두한이 부하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전쟁의 주체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전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구가 되어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려는 가운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오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5장 15절에서 6장 1절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것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론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는 도구로 사용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지만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전쟁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드디어 등장했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전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헷갈려하는 것은 여전히 싸움의 주체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로 두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비유로 말하자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김두한의 쫄개들입니다. 그리고 정작 싸움의 주인공은 김두한입니다. 그래서 ‘아군이냐 적군이냐’라는 소리에 ‘아니야 나 김두한이야’라는 말로 다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이제 왔습니다. 이제부터 전쟁의 시작입니다. 이 전쟁이 누구에게 속한 전쟁인지 그리고 누가 이끄는 전쟁인지 명확하게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택된 군대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군대로 사용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린 문제이고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전쟁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편에서 서서 잘 사용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내가 참여를 하게 되면 성을 13바퀴 돌아도 이길 수 있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도 하나님 편에서 멀어지게 되면 아이성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지금 살펴보는 여호수아의 군대장관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누구의 전쟁인가? 전쟁을 앞두고 그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자리에 내가 있을 때에 오늘 본문은 정말 이상하게 붕 떠버린,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닥치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치열하게 싸우는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이며, 내가 어떠한 전쟁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하고 싶은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싸워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내가 이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의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나를 주인공으로 대장으로 만들고 스스로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이 전쟁에서 나는 쫄다구입니다. 대장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하나님의 전쟁!
그 전쟁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일까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전쟁에 동참한 군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싸움에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어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준비되었냐? 이제 나가자! 하나님의 전쟁에 동참하자! 이 전쟁은 승리가 결정된 전쟁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이제 신나게 싸워보자!’라고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 편에 서있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내가 치러야 할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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