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잘 지내시죠?"

소리유리 2024. 7. 2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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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방학은 내게 개학이다. 

두 아이가 다 학원에 간 이후 자유시간이다. 

경의선숲길로 해서 홍제천으로 간다. 

덥고 습한 날씨지만 어제보다 선선하다. 

 

사람들이 홍제천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오리들이 단체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늦었다.

오리가 다 올라왔다. 

 

 

홍제폭포까지 왔다. 

이곳에 오면 꼭 가는 곳이 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정말 시원한 곳이다. 

 

그곳은 바로 화장실이다. 

에어컨이 정말 빵빵하게 나온다.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세상이다. 

땀이 순간적으로 멈춘다. 

물론 냄새는 그렇지만...

 

 

아내에게 연락 온다. 

아이들 학원 끝나면 데리고 온다고 한다. 

좀 더 걸어간다. 

 

옛 곳의 한 분이 전화가 왔다. 

받는다.

잘 지내나는 말에 그냥 그렇게 지낸다고 답한다.  

환급 문제로 온 연락이다. 

내 통장이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전화를 끊는다. 

 

수입이 없는 가운데 듣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곳이 생각나 찝찝하다. 

연락온 분은 잘 알고 친하게 지내던 분이지만 나도 모르게 아주 형식적인 인사를 한다. 

가장 일반적인 인사... 

 

'잘 지내시죠?'

 

답은 보통 정해져 있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죠?'

 

정해져 있는 답을 하지 않는다. 

못 지내지 않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없다. 

그곳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내겐 가해자다. 

가해를 하고 나서 피해자에게 '괜찮지?'하고 묻는 것 같다. 

 

그들이 나에게 한 가해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이라도 말이다. 

아직도 그 사람과의 통화와 문자가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역자들(?)의 이야기도 너무 많이 들었다. 

동조자들, 함께 한 사람들의 활약상(?)들... 

 

한 순간의 전화통화, 아주 형식적인 인사지만 쉽게 정해져 있는 말을 못 한다. 

구체적인 내용의 카톡과 인사에도 가장 형식적이고 간략한 답변으로 마무리한다. 

통화 후의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 포방터까지 걷는다. 

걸으며 이런 저런 잡념들을 떨쳐낸다. 

오늘은 여기까기 걷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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