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아내가 화났다!"

소리유리 2024. 3. 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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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오후에 약속이 있고, 첫째도 약속이 있고, 둘째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외톨이(?)가 된 나는 산책에 나선다. 
오늘도 홍제폭포다. 
홍제천이 깨끗하지 않다. 
날이 조금 풀려서 물고기는 많다. 
혼자만 색이 다른 물고기가 있어 찍어본다. 
 

 
아침에 교회까지 걸어갔다 왔지만 좀 더 걸어본다. 
포방터까지 왔다. 
날이 맑지 않다. 공기도 썩 좋지 않다. 
포방터까지 온 인증샷을 찍어본다. 
 

 
이제 아름인도서관으로 향한다.
주일에 이렇게 산책을 하는 것이 이제 익숙해지려고 한다. 
이런 산책이 좋기보다는 씁쓸하다. 
오늘 예배는 좀 힘들었다. 
 
예배 순서 순서마다 자꾸 기억을 되살리는 것들이 있다. 
비전트립에 대해 광고를 한다. 
우간다, 아르헨티나에 간다고 한다. 
규모가 있는 교회라 스케일이 크다. 
문득 그곳에서 있던 일들이 떠오른다.
 
비전트립 자체는 좋은 기억과 추억이다.
하지만 그곳과 연관되어 있고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답답함을 느낀다. 
집중이 잘 안 된다. 
 
스마트폰을 열어 설교를 메모한다. 
그렇게라도 집중하려고 노력해 본다. 
그곳과 다른 교회지만 구석구석 잊었던 생각을 되살려주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든지 목회를 이어가려고 수요설교, 주일설교도 올리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과 그 사람에게 받은 충격은 크다.
시간이 좀 지나 생각하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여진은 여전하다. 
 
이번 일이 나에게 남긴 충격만큼 우리 가족 모두도 그렇다.  
특히 아내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이런저런 일이 생겼고 생기고 있다. 
 
이번 일로 아내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카톡을 정리했다. 
그 가운데는 오랫동안 만남을 가지며 친분을 쌓았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번일로 거의 모두 강제 정리되어가고 있다. 

이번 일의 사정을 대부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런저런 사정을 미리 알려주거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같이 공감하며 분노, 분개할텐데... 
 
이번 일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공감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 일은 머릿속에서 삭제하고 친했던 시간과 지금을 이어버린 것일까?
 
아내가 특히 이번주에 힘들어한다.  
아니 아내가 화났다. 
지금도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아내가 기다렸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안부를 묻는다.
아내가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난 후 안부를 물어야하지 않을까?' 내게 묻는다.

아내도 그 사람에게 형식적인 답을 했다. 
내가 한 마디 한다. 
'잘 지내시냐'는 말에 '잘 지내기 힘들다고 답하지'라고....
아내가 대답한다. 
형식적으로 말해도 알아들었을 거라고... 예전에는 이렇게 답하지 않았다고... 
 
내가 또 말한다. 
'그렇게 알아들을 사람이면 그렇게 말할까?'
이건 속으로 말한다. 
 
사람이 무섭다. 
아무 일 없이 지낼 때 보았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무서운 사람이 가려진다. 
이번 일로 연락을 지속할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려진다.  
 
그렇게 되는 상황이 웃프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렇다.
그곳, 그곳에 있는 사람들, '부'씨들... '장'씨들... 
특히 그 사람은 다 잊고 잘 지내고 있을 텐데...
우리 가족만... 
 
아니 우리 가족도 열심히 살고 있다. 
아이들은 수련회도 하고, 찬양팀, 워십팀, 제자반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귄다. 
아내는 열심히 살고 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곳과 관계된 것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떠오르면 여전히 화가 난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하는 가까왔던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잘 지내세요?' 또는 '잘 지내세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말...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걸까?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빨리 다른 일을 하라는 뜻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교회는 다 그래'를 이야기하며 순응하고 살라는 것일까?
 
아마도 이미 벌어진 일 그냥 잊고 잘 살라는 뜻이라 생각된다. 
최소한 그 일이 불의한 것이라면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래서 무슨 소용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친한 사람의 가족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 가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시 살릴 수도 없고, 돌아가셔서 다 끝났으니까 죽은 사람 자꾸 생각하지 말고 넌 잘 살아'
 
또는 본인이 억울한 일을 당해 분노하고 있을 때...
친한 친구가 '어차피 벌어진 일 어쩌겠어. 잘 살아'라고 말한다면... 
아니 그 말조차 없이 억울한 상황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그 일 후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상시처럼 인사하며 잘 지내라고 한다면?
 
맞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고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이 일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남겨진 나와 가족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소한 공감이 우선이다.
최소한! 
세상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그곳, 그 사람들, 그 사람은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다. 
 
... 아내가 화났다. 
그래도 옆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화낼 만하기 때문에 화났다. 
그동안의 관계 때문에 더 화났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기에 화날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말한다. 
오늘 지인을 만나 스트레스 풀고 오라고...
아내가 간단하게 답한다. 
'어이상실... 암튼 일주일 내내 화가...'
 
오해는 금물... 내게 어이상실한 것이 아니다. 
이번 일로 어이상실한 것이다. 
'일주일 내내 화'가 이번주엔 좀 사그라들길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보니 문제는 '나'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를 진정시켰지만 나는 순간적인 화가 아니라 숯불 같은 화가 서서히 올라온다. 
곱씹는 성격이다. 
안 좋은 성격이다. 
이번주 망각의 은혜가 내게 강력하게 임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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