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주일설교] "부득이하여도!"(삼상 13:8~15)

소리유리 2023. 12. 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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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사무엘상 13장 8~15절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2023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고 31일입니다. 
오늘 한 해가 저물고 바로 내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2023년 어땠나요? 올해 나의 성적표는?
낙제점 'F' 혹은 'A+, A'에 가까울 만큼 만점에 가까운 한 해였나요? 
 
오늘 사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2023년 나는 어떤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백성들의 기대를 받으면 왕이 됩니다.
왕이 되면서 그는 그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가를 실감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계속 왕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처음이기 때문에 아주 아주 어려웠을 것입니다.
 
처음이라는 것! 그것은 큰 부담입니다.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이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부담감을 안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되고 2년이 지난 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 백성들을 잘 지키고 보호하는 것!
사울은 왕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을 것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을 19, 20절입니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며 왕이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합니다.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다스리면서 하는 중요한 일은 바로 백성들 앞에 나가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주변의 강력한 이방 나라들이 건들지 못하게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그러한 기대를 안고 왕이 되었기에 그것을 충족시켜줘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문제는 가까운 데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블레셋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가까이 있는 블레셋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왕을 요구했기에 사울에게 있어서 블레셋에 대한 대처는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왕이 된 지 2년에 그에 대한 대처를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 2절입니다.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스라엘 사람 3천 명을 택합니다. 요즘 이야기로 상비군을 만듭니다.
2천 명은.
이로 인해 블레셋을 위협하고 공격하여 이스라엘에서 몰아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13장 3절입니다.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칩니다. 큰 전쟁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사울이 있는 기브아에서 게바는 약 3마일, 약 3킬로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입니다.
게바에 블레셋 수비대가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블레셋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13장 4절을 볼까요?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이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이 미움을 받게 되고 사울은 온 땅에 나팔을 불러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기존의 3천 명으로는 택도 없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떠한 대처를 할까요?
5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라고 말합니다. 
 
블레셋 군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입니다. 그리고 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합니다.
병거가 3만이라는 것은 아주 대단한 숫자입니다. 이전에 사사 시대에 하솔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철병거 9백 승으로 20년 간행한 것을 생각해 보면 병거가 3만이라는 것은 아주 아주 대단한 숫자입니다.
게다가 블레셋 사람들 아주 대담합니다. 눈치 볼 것도 없이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을 칩니다.
믹마스는 바로 사울의 상비군 2천 명이주둔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고향 즉 지금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기브아에서 불과 7, 8킬로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즉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우르르 모여들고 그 수는 엄청 많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바로 코 앞에 와서 진을 치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그들은 이러한 블레셋의 반응에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6, 7절입니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위급함과 절박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게 됩니다.
즉 피신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예 이민을 갑니다.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사울은 어쩐 일인지 아직도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두려워서 떱니다.
 
난리가 납니다. 백성들은 블레셋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왕을 요구했는데 이제 더 큰일이 납니다. 숨느라 정신없고 아예 멀리 떠나기도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는 든든해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 같이 있어서 두려워서 떨게 됩니다.
 
사울이 아직도 길갈에 있는 것은 아마도 사무엘과 길갈에서 제사를 드리기로 약속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은 아직도 길갈에 있고 블레셋은 코 앞에 다가오고 백성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지고 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13장 8절입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무엘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습니다.
이레 즉 7일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오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기간이 아니라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15절을 보면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가 6백 명가량이라고 합니다.
적은 엄청난 수로 다가오는데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은 이제 겨우 6백 명가량만 남습니다. 이거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한 행동이 바로 9절입니다.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스스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사무엘과 약속을 했지만 군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10절을 볼까요?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기다렸다는 듯이 번제를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옵니다. 문제는 사울이 나가 사무엘을 맞는데 문안하매라고 나옵니다. 이 '문안하매'는 직역하면 ‘그를 축복하기 위해 나가 맞으매’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한 기한대로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마음은 초조해집니다. 백성은 점점 흩어집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빨리 와서 제사를 드리고 환호성 지르고 잘해보자고 하는 것인데 오지 않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 생각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기왕 올 거면 빨리 오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굳이 나가서 축복하기 위해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가 축복하면서 맞이하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사울 스스로 찔리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 더욱 오버하는 것이죠.
 
이것은 사무엘의 말에서 더욱 드러납니다. 11, 12절입니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호통을 칩니다. 다짜고짜 질문합니다. 축복에 축복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움찔한 사울 그는 이제 나름대로의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사울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이제 구체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백성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상대인 블레셋은 병거만 3만인데 그리고 이것은 사무엘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정한 날에 오지 않으니까, 게다가 블레셋은 바로 눈앞에 믹마스에 모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블레셋 사람들이 언제 길갈에 쳐들어 내려올지 모르는데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사울을 힘들게 했기에 부득이하게 번제를 드리게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부득이하여"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부득이'라는 말은 “마지못하여하는 수 없이”라는 말입니다. 진짜 하기 싫은데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번제를 드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가요? 사울의 심정, 상황... 이해가 되시나요? '부득이'라는 말이 잘 사용되었다고 판단되십니까?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상황, 정말 힘든 이 상황에서 사울이 부득이하게 한 번제. 이 정도면 이해, 수긍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13, 14절입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사울이 부득이하게 한 그것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그것이 어떻다고 이야기합니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불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를 세우실 것을 이야기합니다.
 
부득이하게 한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 불순종,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황당할까요? 죄? 그게 뭐... 마지못하여하는 수없이 한 건데...
문제는 죄를 판단하는 분이 바로 죄! 불순종!이라고 판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울 본인도 사무엘을 오버하면서 맞이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잘못임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억울합니다. 왜요? 그 상황이 부득이하다는 것입니다.
 
'부득이'
올해 그 '부득이'가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단어가 아닐까요?
부득이하게... 어쩔 수없이...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할 마음은 없었는데...
 
문제는 그 부득이하게 한 그것을 하나님은 불순종이라고 하십니다.
즉 부득이하게는 내가 내 스스로 합리화하고 편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하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부득이하다. 그 상황은 아주 그럴듯하고 주변에서도 인정해 줄 만합니다.
아무도 손가락질, 지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것이 정말로 부득이한 것이지...
 
2023년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어떠신가요? 사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한 해를 넘기면서 이상한 '면죄부'(?)를 사용합니다. 
모든 것을 리셋합니다. 
 
면죄부, 리셋을 하면 2024년 '부득이'가 다시 등장합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하나님은 고개를 가로저으십니다. 
그 단어를 버려야 합니다. 
내일? 내년부터?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입니다. 
스스로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부득이하여"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죄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병거만 3만의 블레셋 군대이고 당장 백성들은 흩어져 가고...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임을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부득이하다는 그 말은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2024년도 '부득이하여'로 시작하게 됩니다. 
 
2023년 나의 '부득이하여'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2024년 '부득이하여도'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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