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교회생활의 기본적인 것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으로 '예배'를 주제로 설교했고 오늘은 '헌금'에 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말라기 3장 7절에서 12절까지 말씀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본문은 많은 설교자들이 가장 좋아하거나 아니면 가장 꺼려하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말라기서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본문이 말라기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아님에도 가장 유명하게 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옮길 때 개척교회 혹은 건축을 앞두고 있는 교회는 잘 가지 않습니다.
왜 잘 가려 하지 않는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개척교회, 건축을 앞둔 교회의 공통점은 물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설교시간에 헌금, 돈 이야기하는 것은 꺼려지는 부분입니다.
부흥사들 외에 헌금을 설교시간에 강조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물질이라는 부분은 민감한 만큼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도 재물 즉 현재의 돈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이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돈의 막강한 힘!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말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데 돈을 사용하니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도 그러한 경우의 하나겠죠.
돈이 있으면 외모가 바뀌고 돈이 있으면 만사형통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돈이 있으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재벌 자녀들의 결혼을 봐도 그렇고 돈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빠져나오는 세상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상이기에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기에 참으로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막강한 힘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조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을 통해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면 오늘 말씀대로 복이 쏟아진다고 말합니다.
말씀 그대로 하면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으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 한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말씀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까 봐 억지로 내기도 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고 많은 설교자들이 헌금을 강조할 때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래서 꺼리기도 하는 그 본문이 진짜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7절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7절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12절 끝도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끝납니다.
즉 지금부터 살펴볼 말씀은 확실하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개척교회 목사님이나 건축을 앞둔 목사님이 마음대로 지어낸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7절에서 강조되는 것은 먼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도 돌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돌이켜 떠나가는 반역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라'는 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회개하라는 말 대신에 '돌아오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즉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자체가 하나님께로의 복귀를 뜻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로 구분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소극적이라는 것은 지난 일을 깨닫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뉘우치는 것이고 적극적인 회개는 옛 것들을 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보통 회개는 구분하지 않고 이 두 가지를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합니다.
‘우리가 어떤 면으로, 무엇으로’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합니다.
그동안 너무나 익숙하게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을 이제는 보지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죄인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때 나는 반발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죄를 살펴보지도 못하는 것!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의 죄를 발견하지도 못하는 상태!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대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8, 9절입니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십일조, 봉헌물을 도둑질했고 그것도 온 나라가 함께 했음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고도 말씀합니다.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이 저주를 받은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바로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십일조와 헌물!
이것은 많은 이야기와 그리고 의견을 나오게 합니다.
먼저 십일조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십일조 이것이 어디서 처음 등장할까요?
창세기 14장 20절입니다.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립니다.
또한 야곱이 벧엘에서 서약을 했고 무엇보다 모세의 율법에 그것을 명료화했습니다.
십일조 그것을 ‘여호와의 것’ 또는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레위기 27장 3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레위인들에게 주기 위한 기업입니다.
민수기 18장 25~29절을 보겠습니다.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또한 28절에 보면 레위인들은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려야했습니다.
신명기 14장 29절도 보겠습니다.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 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말씀을 보면 매 삼 년 끝에 전 소산의 십일조를 다 모아 성읍에 저축하게 하고 레위인뿐만 아니라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도 나누어 먹게 했습니다.
결국 십일조는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일조는 주의 성전의 일에 전무하던 레위인들의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의무였습니다.
또한 헌물은 ‘높이 올려 바치는 것’의 뜻으로 우리나라 말 성경에서는 거제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수기 15장 19, 20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이것도 또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헌물 또한 레위인과 제사장 그리고 회막 봉사와 성전을 꾸미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문제는 이 십일조와 헌물이 신약시대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인가?
또한 지금 이 시대에도 지켜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말로 이러한 문제를 율법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있어서 현재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과 현재까지도 지켜야 되는 것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전반인 것들을 이야기하긴 어렵고 오늘은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것은 오늘 다루겠습니다.
십일조와 헌물 그것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해 또한 과부와 고아를 위해 더 크게는 성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에 대한 의무는 지나갔으나 고아와 과부 그리고 주의 일꾼들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필요했고 바쳐졌습니다.
즉 그 원리는 현재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주의 일꾼들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일에 참여하는 것 그것 자체가 봉사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5절입니다.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또한 드려진 것을 통한 균등과 청지기로서의 의무에 대해서도 고린도후서 8장 13~15절에서 말씀합니다.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로 빌립보서 4장 18절에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과 저주로 연관 지어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라기로 돌아가서 10~12절을 보겠습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보면 양식이 없어 주의 종들이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에 대해서 말라기 앞부분에서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제사장들 그리고 레위인들의 기업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리고 그것을 드리지 못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늘 문을 연다는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복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곡식을 거두기 위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11, 12절에서 메뚜기는 ‘먹어치우는 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즉 특정한 어떤 것을 지칭하기보다는 그동안 애써 가꾼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들을 지칭합니다.
그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열매도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풍성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풍성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잘 거둬들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십일조와 헌물을 잘 내면 그것의 몇 배로 복을 받는다는 결론을 쉽게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결론을 내버립니다.
이것은 초등학생의 발상입니다.
의미와 뜻은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제 좀 자라났으면 이제 생각이 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장사꾼도 아니고 '너 십일조와 헌물 냈어?'하고 따지시면서 '넌 복 넌 저주'하고 다니시겠습니까?
십일조와 헌물 그것에만 너무 정신을 집중하지 마십시오.
초등학생의 발상도 맞습니다.
하지만 중간을 다 생략해 버린 문제와 답만 남아버린 우스운 꼴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왜 십일조와 헌물을 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하실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의 용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노력도 하지 않고 그 땅의 곡식으로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립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강조됩니다.
청지기 정신이라고도 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없고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의 일부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돈, 재물, 곡식 등' 그것들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보다 우위에 있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신 하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할 때에 바로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저주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 '돌아오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도둑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청지기로 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지 않기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와 헌물의 용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구약시대에는 레위인, 제사장들에게 주로 쓰였으며 과부와 고아 등 기업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 쓰였습니다.
하나님의 올바른 공동체를 위해서 십일조와 헌물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 일에 전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과부와 고아 등 가난하고 기업이 없고 분깃이 없는 자들에게 쓰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지금도 십일조와 헌물은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나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선교헌금 한다고 얼마를 내놓고 하나님의 일을 다 한 것처럼 뻐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안 되지만 혹시 헌금 내지 말고 저주를 해보십시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돈이 없어도 되지만 그 일에 우리를 동참케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십일조와 헌물을 내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고 가난한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먼저는 그것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자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벌었는데... 내가 일한 삯인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고 팔도, 다리도, 목소리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도 공짜로 다 주셨습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감사를 드렸으면 합니다.
즉 십일조와 모든 헌물들을 함으로 내가 무엇인가 해내었다는 자부심보다는 '하나님 저를 그 일에 동참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가 먼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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