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그리스도인의 확신(3) - 승리의 확신"(요일 5:4, 5)

소리유리 2024. 3. 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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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을 주제로 설교합니다. 

첫째 주에 구원의 확신, 둘째 주에 기도응답의 확신(1), 셋째 주 기도응답의 확신(2)을 했습니다. 

오늘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승리는 '겨루어서 이김'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확신이 붙으면 '겨루어서 이길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겨룬다는 말을 찾아보면 '1. 가리기 위해 맞서 다투다, 2. 누가 더 나은가를 가리기 위해 맞서 다투다, 3. 더불어 승부를 다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다투다'입니다. 

 

다툰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옵니다.

승리자가 있고 패배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것! 승리자가 되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승리의 확신'입니다. 

 

'가리기 위해, 누가 더 나은가를 위해, 승부를 타투기 위해' 겨루고 있는데 이미 승패가 결정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승리자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자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고개가 끄떡여지시나요?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늘... 

내가 승리자로 살지 못합니다. 

승패를 겨루는 상황에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가져야 할 기본적인 확신에 '승리의 확신'을 이야기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요한1서 5장 4, 5절입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자마다' 즉 모두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이긴다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해가 되면서 실망합니다. 

"믿음으로 이기는구나... 그렇지 뭐..."

 

5절을 보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이해는 되지만 큰 힘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말씀은 알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실제로는 세상에서 패하고, 좌절하고, 실망하지만 믿음으로 이겨내자 그런 뜻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자기 합리화라고 합니다.

 

말씀의 본래 의미보다는 내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본래 의미를 찾고, 승리의 확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실패도 경험하고 패배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나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왜 하나님이 나에게?" 등의 질문을 하며 원망하기도 합니다. 

 

풍성하지는 못해도, 대박이 없더라도 그냥 평안하게 살았으면 하는데 삶이 그렇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시험이 닥칩니다. 

어려움이 몰려옵니다. 

여기서 말씀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입니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내게 몰아치는 시험에 대하여 '감당할 시험'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숨이 막히고, 잠도 못 자고, 분노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데 가혹하게도 '감당할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 '아닙니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시험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인데..'

하나님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180도로 다릅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라고 말씀합니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 신의가 있다'는 뜻입니다. 

신실은 믿음직하고 착실한 것이고, 신의는 믿음과 의리입니다. 

즉 미쁘다는 말은 '믿음과 의리가 있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시지 않고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틀리지 않습니다.

내게 감당치 못할 시험이라고 느껴지는 그 모든 것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리라'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감당할 시험! 

그렇게 확신하는 것은 그 시험의 목적에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과 같이 헛갈려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유혹'입니다. 

 

시험과 유혹은 비슷합니다. 

아니 모양이 똑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분명히 다릅니다. 

시험은 통과가 목적입니다. 시련이라고도 하는 시험은 교육적입니다 

유혹은 탈락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파괴적입니다. 

그리고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고 유혹은 사단이 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시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입니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본문을 새번역성경으로 보면 더 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3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시험에 빠질 때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굉장히, 아주 많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시험을 다르게 표현함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시험을 믿음의 시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즉 시험이 나를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은 결코 아니지만 '시험'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시험으로 내가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은 나를 탈락시키고, 실패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입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선생이 되어야 할 내가 초보에 머물러 있을 때에 시험을 통해 나를 선생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시험은 우리의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은 나를 실패자, 패배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고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시험은 나를 승리자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승리자는 아닙니다. 

 

시험을 통과해서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과 못해도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시험은 우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지 우리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승리라는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승리의 기준입니다. 

세상의 승리는 잘 살고, 잘 먹고, 풍성한 것, 힘과 권력 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을 번쩍 들어 이겼다고 판정해 주시는 것이 진짜 승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자로 인정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승리'는 겨루어 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와? 어느 상대와?

세상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1서 2장 16절입니다.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이 대립되는 관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승리의 확신은 내가 승리할 것을 100%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의심하지 않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너희가 환난, 시험, 고통, 고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긴 싸움에 내게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이미 승리가 결정된 싸움에 내가 그분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붙으면 승리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1서 5장 4, 5절입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내가 싸워서 승리를 쟁취했다기보다는 승리를 하신 예수님 편이었기 때문에 나도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표선수가 승리하면 우리나라가 승리한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이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이 내가 승리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 편에 잘 붙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싱겁게 결말을 맺습니다. 

승리의 확신은 '내가 믿어야지! 반드시 나는 승리할 수 있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내가 할 것은 그 편에 붙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자로 내가 애써야 할 것은 좋은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승리자로 승리자다워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편에 있어서 승리한 내게 자꾸 시험을 주시며 성장하라고, 온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욥기 42장 5절입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잘 통과해서 '귀'로 듣던 수준에서 '눈'으로 보는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 편에서 우리는 높은 수준으로 더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은 승리자에게 주어진 당연한 삶입니다. 

 

승리를 위해서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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