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주일설교] "룻기(9)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한 인애"(룻 3:6~18)

소리유리 2024. 3. 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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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입니다. 

March!

3월이라는 말처럼 앞으로 더 전진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룻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타작마당으로 행진, 진군합니다. 

 

오늘 룻기 9번째 시간입니다. 

룻기를 살펴보다 보면 내용이 너무 극적이기 때문에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내용도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갈등의 최고점에서 해피엔딩의 결말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룻은 이제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야기한 데로 행동하기로 합니다.

이 결정이 위험을 무릅쓴 모험임은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음 이야기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오늘 본문은 3장 6~18절입니다.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눈앞에 펼치지는 듯한 장면이 전개됩니다.  

5절로 잠시 돌아가볼까요.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리고 6절입니다.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제가 타작 마당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대단한 일인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앞에서 강조하고 강조한 내용에 비해 결과는 좀 싱겁습니다. 

5절에서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로 끝나고 바로 6절에서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로 이어집니다. 

'행하리이다'라고 말하고 바로 명령대로 다 행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룻의 '인애'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인애라고 표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생각하며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의식주가 며느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시어머니에 비해 며느리가 강자입니다. 

이 부분은 앞부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강자인 며느리가 여전히 약자인 시어머니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쯤에서 인애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외워보겠습니다. 

 

‘약한 자가 곤궁에 처해있을 때 강한 자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 사랑’

 

지금 룻은 자신이 처음에 나오미에게 보여준 인애를 변함없이 그리고 더한 인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오미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복종 그리고 사랑을 보여줍니다. 

처해진 환경이 나오미에 비해서 룻이 더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보아스의 곁에 가서 눕습니다. 

7절입니다.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7절에서 보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라고 나옵니다.

룻의 행동은 아주 고용하고 말 그대로 가만히 잔잔하게 움직입니다.

보아스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오미의 의도대로 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울 때, 즉 룻은 받아들이기 쉬울 때에,

잠이 들기 전에 보아스에게 나아갈 것을 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룻은 그 기회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한창 분위기가 익어갈 때 그리고 분위기 좋을 때에 프러포즈를 하고 그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밤중에 보아스가 문득 깨서 프러포즈를 받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8절입니다.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한 밤중이 됩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갑자기 추위를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겉옷을 덮고 잤는데 룻이 발을 벗겼기에 추위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겉옷이 옆으로 밀려서 추위를 느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문득 잠을 자다가 추위를 느껴 옷을 더듬어 찾습니다.

그리고 더듬거리다가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놀라다'는 말은 원래 무서움을 떤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무서움으로 떠는 상황이 아니므로 추위로 인한 몸의 떨림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돌이켜'라는 말은 '건드리다, 더듬다, 만지다'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즉 추위에 몸을 떨며 옷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더듬거리면서 찾는 보아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듬거리다가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9절입니다.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보아스는 ‘네가 누구냐’라고 묻고 룻은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프러포즈로 생각하면 참 분위기 없고, 전혀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누구냐'는 말에 저 누구입니다.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라는 말은 사무적으로 느껴집니다. 

추위에 놀라 깬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생뚱맞아 보입니다. 

남자는 보통 여성의 연약함을 보면 감싸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남자는 보통 약해집니다. 

지금 여기서는 뭔가 약하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상황이 또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텅텅 비어진 나오미와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와 끼니를 연명한 룻.

그리고 이제 추수가 다 끝난 상황에서 약한 모습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하나의 계획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풍부한 감성으로 감싸고,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멋진 미사여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더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룻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간단하게 왜 이렇게 하는지 용무를 밝힙니다. 

참 멋대가리 없는 고백입니다. 

 

룻의 대답 속에서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여기서 '옷'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한 사람의 옷은 그 사람의 집이며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옷을 전당 잡았을 때에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만 했습니다. 

겉옷이 잘 때는 이불로도 쓰였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장 12-13절입니다.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또한 '옷자락'은 사람의 인격의 중심, 한 사람의 능력의 중심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스가랴 8장 23절입니다.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룻의 대답과 관계된 중요한 구절은 에스겔 16장 8절입니다.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결혼하는 것을 옷자락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옷을 여자에게 올려놓는 것은 결혼 요구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룻의 대답에서 '옷자락'의 부분을 아주 의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표준새번역)

 ‘저와 결혼해 주세요’(현대인의 성경)

또한 '옷자락'은 '날개'라는 단어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날개라는 단어를 보면 기억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입니다. 

 

2장 12절입니다. ‘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은 보아스에게 '당신이 그 날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라고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추위에 놀라 잠이 깬 보아스에게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말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룻에게 말합니다.

10절입니다.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는 갑작스러운 사태를 파악하고 이 일을 잘 해결해 나갑니다.

놀란 것은 보아스인데 보아스가 도리어 룻을 안정시킵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는 이삭 줍는 룻에게 인애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인애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지금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보아스인데 보아스가 룻은 안정시키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룻은 처음에 나오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인애를 보였고, 이삭을 주어 나오미를 모시는 인애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으로 말하는 '지금'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기업을 영원히 잇게 하려는, 위험을 무릎 쓴 인애를 보입니다.

'나중' 즉  '지금'의 인애가 더하다고 말합니다. 

보아스의 말은 룻의 인애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따르지'라는 말은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추수밭에서 만났던 소년들에게 청혼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실 나이가 꽤 많은 보아스 보다는 추수밭에서 일하는 소년들의 청혼이 더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자'라는 말은 한창 남성적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 청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룻에게 있어서 멋진 청년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보아스에게 간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인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애가 처음 보였던 인애보다 더 하다는 것을 보아스는 칭찬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11절입니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는 이제 룻은 현숙한 여인으로 부릅니다.

룻은 이방에서 온 과부에서 시작해서 여종, 시녀 그리고 이제는 현숙한 여인으로 급상승하게 됩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를 소개하면서 유력한 자라고 부르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유력하다는 단어가 바로 현숙하다는 말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즉 이제 유력하고 보아스와 현숙한 여인 룻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계속해서 보아스의 말이 이어집니다. 

12, 13절입니다.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잠시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바로 '기업 무를 자'입니다.

'기업 무름'이라는 것은 ‘가족의 재산을 다시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책임, 가난 때문에 몸이 팔린 친족을 속량 하는 책임, 피의 보수자의 역할 담당’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말이죠?
쉽게 말하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노예 상태나 가난과 곤경에 빠져있을 때에 그들을 구해줄 책임이 바로 기업무를 자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권면사항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무를 자는 결국 친족 안에서 한 사람과 그의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 무를 자와 계대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같이 이해해야 하지만 지금은 기업 무를 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보아스는 자기보다 앞선 친족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라고 말합니다.

이 '머물다'는 말은 성경에서 한 번도 성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없습니다. 

14, 15절입니다.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보아스의 말대로 새벽까지 발치에 있다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에게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결심을 상징적으로 타작 마당에서 나온 곡식의 상당량을 룻에게 주어 보냅니다. 

 

16~8절입니다.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룻은 몰래 다시 나오미에게로 돌아옵니다.

보아스가 자신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받아온 보리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파악한 나오미는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을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여유와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룻기는 인애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보아스는 룻에게 이전에 보였던 더 큰 인애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설교제목에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은 향하여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고 말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하다는 말...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 

 

우리는 종종 인애를 베풉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거나 더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한 번에 하는 것은 쉽지만 꾸준한 것이 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수련회 또는 기도회를 통해 은혜받고 뜨거운 마음으로 앉은자리에서 성경책 50장 읽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가지고 꾸준히 매일 성경을 3장씩 읽는 것은 힘들다는 말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하다는 말!
사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첫 만남은 정말 좋았는데 나중에 점점 알고 지내다 보니 더 좋더라가 아니라 처음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지금 나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습니까?   

처음과 지금 그리고 나중이 점점 상승곡선을 타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인애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인애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면... 

진정한 인애는 점점 더해져 가야 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한 인애가 진짜 인애입니다. 


우리의 인애,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았으면 합니다. 

처음보다 지금이 더 그리고 앞으로 더!
룻의 인애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크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인애를 알게 된 보아스는 자신도 처음보다 더 큰 인애를 룻과 나오미에게 베풉니다.

그리고 이 인애의 가장 완벽한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인애입니다. 
그분의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크지 않다면 지금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크고 대단하길 소망합니다.

지금보다 시간이 갈수록 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애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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