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설명절.
함께 식사하고, 세배하고, 담소를 나눈 하루였을 것입니다.
온 가족이 모두 함께 할 때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필수입니다.
어떤 일에도 내가 먼저라는 마음으로 서로 섬기고 배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먼저 섬기고 배려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손해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배려, 섬김은 좋은 말이고 행동이지만 '일부로! 고의로!'라도 생각하며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에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 모습이 등장합니다.
룻기 6번째 시간입니다.
6번째 시간에 드디어 룻과 보아스가 만납니다.
오늘 본문은 룻과 보아스의 첫 만남과 그들의 대화가 중심입니다.
그리고 룻기의 중심적인 주제인 ‘인애’가 또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인애는 강자 룻이 약자 나오미에게 보여준 인애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등장하는 두 번째 인애는 강자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주는 인애입니다.
인애의 의미에 대해서 매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말씀드립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라는 인애는 '약한 자가 곤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강한 자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이는 사랑과 충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인애를 보여줍니다.
강자인 보아스가 굳이 룻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사랑과 충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룻기 2장 8에서 16절입니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습니다.
남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이방 여인의 심정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먹을 음식이 생긴다는 희망도 있지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룻에게 이제 보아스가 다가옵니다.
보아스가 먼저 룻에게 말합니다.
‘내 딸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을 통해 보아스가 룻에 비해 나이가 상당히 많은 인물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딸이라는 표현을 통해 보아스가 룻에 비해 높은 위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으나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닌 가족적인 관계에서의 높은 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말합니다. 8, 9절입니다.
이 부분을 요약하면,
첫 번째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는 것.
두 번째 자신이 일하는 소년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 일하다가 목마르면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룻은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10절)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방여인입니다'라는 말속에는 '저는 그런 은혜를 받을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본인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은혜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 때는 다시 받을 것을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줄 만한 사람에게 줍니다.
하지만 진짜 베풂은 다시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방여인을 이렇게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절대로 배려, 섬김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다른 사람들도 베풂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은혜 베풀기 힘든 사람에게 주는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이방 여인에게 베푸는 인애.
다른 이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굳이? 왜 그런 일을?'
다른 이들이 들으면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 보아스가 말합니다.
11절입니다
'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보아스는 룻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룻이 어떤 여인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룻의 인애를 알고 보아스는 놀랐습니다.
당시 사사 시대는 악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룻의 인애는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베푼 인애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이 베푼 인애를 듣고 놀라워했습니다.
좋은 의미의 '끼리끼리'입니다.
룻의 인애에 대한 보아스의 말은 이어집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인과응보의 하나님으로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내가 하는 만큼 하나님이 주신다는 공식이 아닌 행한 일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행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 특히 장로교인들은 믿음을 너무 강조하다가 보니까 행함에 대하여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는 개털모자와 황금 면류관을 이야기하고 상급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행함이라는 것은 믿음과 동떨어져서 나오는 부분이 결코 아닙니다.
행함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았기에 당연히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항상 누리면서 사는가?
그리고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올바른 반응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인간의 행위, 행동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신 은혜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올바른 반응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무조건적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주님의 자녀답게 행동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자녀답게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애입니다.
그 인애를 지금 룻과 보아스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보아스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이 자신의 조국과 백성과 신을 다 버리고 시어머니를 쫓아온 것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보아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이방여인이지만 그 행위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보답하시고, 온전한 상이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인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보여준 인애입니다.
12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날개’
여호와의 날개란 말은 구약에서 총 107번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뜻합니다.
특히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 것에 대해서 그 날개로 보호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한 적들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을 보기도 합니다.
물이 없을 때에 물을 주시고 음식이 없을 때에 만나를 내리십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필요한 것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선 양다리를 걸쳐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 여호와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기도 하십니다.
룻기 초반에 말씀드렸지만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린 나오미!
이제 여호와께로 돌아갈 길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40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40년의 시간을 통해 여호와의 날개 아래 들어가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들어온 룻!
하나님만 섬긴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 자체가 온전한 상을 받은 것입니다.
보아스의 멋진 말을 들은 룻은 그제야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은 나오미에게 인애를 보였지만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제 룻이 보아스의 인애를 받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말로만 룻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와서 떡을 먹으라고 말합니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소년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합니다.
15, 16절입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인애의 모습을 보입니다.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고 일부러! 고의로!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라!
오늘 설교제목을 '일부러, 고의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인애를 베풀 때 해야 할 자세입니다.
일부러, 고의로 해야 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인애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자연스럽게 인애를 베풀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현재 룻과 보아스의 인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잠시 소년들에게 눈길을 돌려볼까요?
그들이 실제적인 인애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책망하지 말고 꾸짖지 말고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리는 일을 합니다.
신경 쓰며 일부로! 고의로! 말입니다.
오늘 이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일부로! 고의로!
당장 인애를 룻처럼, 보아스처럼 베풀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우리는 일부로! 고의로! 해야 합니다.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야 합니다.
내 소유에서 조금씩 일부로! 고의로! 조금씩 뽑아 버려야 합니다.
희생과 헌신, 손해 보더라도 일부로 고의로 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연휴기간 더 연습해야 합니다.
일부로! 고의로!
'오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일설교] "룻기(7) 생명보다 나은 인애"(룻 2:17~23) (1) | 2024.02.17 |
---|---|
[수요설교] "그리스도인의 확신(1) - 구원의 확신"(요일 5:11, 12) (1) | 2024.02.14 |
[수요설교] "착각(5) 주종전도(主從顚倒)"(삿 21:25) (2) | 2024.02.07 |
[설명절 설교] "시냇가에 심긴 나무"(시 1:1~3) (4) | 2024.02.07 |
[주일설교] "룻기(5) 우연? 필연!"(룻 2:1~7) (0) | 2024.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