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12월 31일 다음은"

소리유리 2023. 12. 3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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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이다.
아이들은 오늘 그곳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린다.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나온 것은 나로 족하다.
선생님들 감사선물도 다 챙긴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한 주 한 주가 참 힘들다.
아이들에게 혹 이상한 말을 하진 않을까.. 어른들의 모습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최대한 부서실에서 나오지 말고 끝나면 바로 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아이러니하게 토, 주일에 온 가족이 신경이 곤두서있다.

... 옛 분들에게 연락이 가끔 온다.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속에 있는 것을 내보이면 좋은 것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내보이면 시끄러워진다.

이번 일로 교인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교인들은 '어디나 다 그렇다'는 반응이고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그래'다.

교인들은 내가 너무 순진했다고 한다.
순진의 의미가 뭘까?
교회에서 너무 세상을 몰랐다는 뜻일까?
본래 다 그런 건데 나만 몰랐다는 말일까?
일어날 일을 너무 예측하지 못했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추궁일까?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같이 분노해 준다.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비난해 준다.

왜? 반대가 됐을까.
... 같이 사는 사람이 누군가와 이야기한다.
본인이 너무 교회를 몰랐다고...
왜 이런 일들을 알아야 하는 곳이 교회가 되었을까?

2023년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많은 생각을 한다. 말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들..
금방 삭제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지만
주일이 있고 교회가 있고 예배를 드리는 한 쉽게 사라지진 않을 듯싶다.

교회에서도 갬블러가 되어 포커페이스를 하며 밀고 당기는 정치를 했어야 했는지..

누군가 위로라고 이렇게 말해준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그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아니... 20년이 지나 이제야 알게 된 나의 어리석음이다.

옛 분이 그곳에 내가 남긴 좋은 것들과 긴 시간이 헛수고가 아니었다고 고마운 말을 한다.
감사하고 알지만 나는 그것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다.
이기적 마음으로 그래야 숨 쉬고 좀 편할 수 있으니까.

내일은 오늘과 다를까..
나만 2023년에 여전히 벗어나지 못할까 걱정된다.

정리 못하고 모든 것을 폐기할 때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챙기는 섬뜩한 장면, 나에 대한 평가와 거짓 그 가운데 당당한 모습..

그 모든 것들이 망각될 때..
오늘 같지 않은 다음이 오리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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