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어린이 주일 설교] "어린아이와 같이" (마 18:1~4)

소리유리 2024. 5. 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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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 그리고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박국 강해를 잠시 멈추고 어린이주일 설교를 합니다. 

교회마다 행사를 합니다. 

물론 대상은 영아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어린이들입니다. 

간식과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다음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간식, 선물을 제외하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저 '오늘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다. 오늘만큼은 잘해주자'

그 정도로 끝납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존중이라는 말은 ' 높이어 중하게 여김'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은, 즉 높이지 않고 중하게 여기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날이 생기기 전에는 어린이라는 말도 없었다고 합니다.

'애기,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사내아이(남자), 계집애(여자)' 등으로 부르며 교육의 혜택을 받는 어린이도 많이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린이날의 역사를 찾아보면 위키백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이날은 1857년 6월 둘째 주 일요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첼시에 있는 보편주의 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레너드에 의해 시작되었다. 레너드 목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예배를 열었다. 레너드는 이 날을 "장미의 날"(Rose Day)이라고 명명했지만, 나중에 "꽃의 일요일"(Flower Sunday)로 이름을 바꾼 후 어린이날(Children's Day)로 명명했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행사가 교회에서 시작합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예배'

그 예배가 시간이 지나 '어린이날'이 됩니다. 

어린이날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교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을 보겠습니다. 

 

13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안수,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데리고 옵니다.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자 예수님은 제자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천국은 들어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은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유대사회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사회에서 파격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1~4절입니다.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절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가복음 9장 33, 34절을 보겠습니다.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오는 도중에 말다툼을 합니다. 

'누가 크냐'의 싸움입니다. 

그들에게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등극하시면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누가 크나', '누가 우리 중의 1순위, 1등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듣고 계셨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물으니까 잠잠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도리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것이 바로 1절의 '그때에'입니다. 

 

묻는 질문은 그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천국에서는'이라는 말이 붙긴 했지만 '누가 크냐'의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아주 충격적인 대답을 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한 행동을 취하십니다. 

2절입니다.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갑자기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웁니다. 

여기서 '한 어린아이'는 갓난아기가 아닙니다. 

부르면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에, 오라면 오고, 제자들 사이에 세울 수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대충 상상이 되는 보통 어린아이입니다. 

 

지금 '누가 크냐'의 싸움에 갑자기 한 어린아이를 등장시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충격적인 말을 하십니다. 

당시 언론이 지금 시대 같다면 1면 대서특필될 만한 내용입니다. 

3절입니다.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충격적인 말을 다시 한번 볼까요.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 이전 시대와 그 당시만 해도 어린이는 여자들과 함께 그 집 가장의 재산 목록에 들어갔을 뿐 결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과 같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크냐'의 싸움에 '한 어린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결단코'라는 말을 사용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결단코'라는 단어는 말하는 사람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결단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1등 논쟁'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아주 아주 놀라운 말입니다. 

그리고 동문서답 같습니다. 

'1등이 누굽니까?, 누가 가장 큽니까?'에 대한 답변에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는 대답입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 갈 수 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지금 가장 크고, 1등은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갑자기 부른 '한 어린아이'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당시 아주 뛰어난, 흠 없는, 선한 아이들 부르셨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고, 이름도 나오지 않는 '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이 어린아이에게서 어떤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에 대해 우리는 보통 순진함, 착함, 선함, 죄가 없는 등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아실 것입니다. 

 

갓난아기도 아닌 보통 어린아이는 순진하고 착하지만은 않습니다.

나쁜 행동도 하고 심한 말도 합니다. 

순진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행동, 말, 생각, 마음을 보면 천국에 갈 만큼 완벽하게 선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들과 같이'는 다른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본질적으로 겸손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그들의 연약함,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고 부모를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부끄럼 없이 부모에게 요청하고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아이들의 어렸을 때에 문제가 생기면 제게 달려옵니다. 

고장 난 것이 있고, 뭔가 잘 안되면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옵니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문제는 부모의 입장에서 거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면 달려옵니다. 

문제가 생기면 가지고 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당당하게 손을 내밉니다. 

부모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겸손함은 자신의 약함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부모에 대한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어린이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합니까?

흔한 말로 머리가 자라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것들에 기대고 의지하지 않습니까?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닌 척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4절입니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가 또 등장합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

그자가 천국에서 큰 자다!

 

어린아이들이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자신은 아직 부족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부모님이 채워줄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믿음!

어린아이의 약함이 강함을 이끕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 10절입니다.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자신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약한 것들에 대해 도리어 자랑하면서 약한 그때에 강하다고 말합니다. 

약한 자신을 통해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이'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

마치 '어린아이 같이' 말입니다. 

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가 바로 가장 큰 자라고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자는 바로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 내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가장 크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얼마나 역사하시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내 안에 살아계시는 그분이 나를 통해 드러나시는가! 

나는 죽고 그분이 살아, 그분을 나타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 가장 큰 자입니다. 

그것을 어린아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도, 우리들도 점점 자라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합니다. 신뢰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고 완벽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같이'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어린이 주일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큰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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