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 그리스도 안의 생활, 지난주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입니다.
제목부터 어렵게 다가옵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구체적인, 즉 양극단의 생각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성령 하나님 즉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기본전제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사단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장 14절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자녀라는 말은 알겠는데 하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해선 안 됩니다.
둘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이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에서 '인도'를 '지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반드시 같이 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문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란 생각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사도신경을 열심히 외웁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사도신경은 가볍게 외울 정도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또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들어간 찬양 가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특정한 찬양을 말씀드려서 그렇지만 몇 곡만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불길'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후렴 부분은 이런 가사가 반복됩니다.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온 천하 세계만방에 퍼치자 성령의 불길"
성령의 불길, 성령의 불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불길, 하나님 불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불길, 하나님 불이 무엇일까요?
이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부르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합니다.
또한 청년들이 좋아하는 찬양 중에는 '성령의 불타는 교회'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성령의 불타는 교회 성령의 불꽃 임하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불타는 교회, 성령의 불꽃을 설명하라고 하면 잘하지 못합니다.
설명한다면 대부분 뜨거운 교회, 살아있는 교회 혹 은사가 많은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찬양과 함께 성령 하나님을 많이 언급할 때는 기도회 때입니다.
기도회가 뜨겁게 되기 위해 성령님을 찾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도를 크게 뜨겁게 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뛰기도 하고 뭔가 화끈(?)한 기도회를 연상합니다.
그래서 기도회 이름 앞에 '성령'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성령집회, 성령기도회, 성령충만기도회 등입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성령 하나님을 하나의 은사, 파워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성령 받으라고 이야기할 때도 마치 어떤 힘, 능력, 은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실 것임을 말하고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하나님을 마음대로 받고 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찬양하면 아주 이상한 찬양이 됩니다.
'하나님 받으라, 하나님 받으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물건도 아니고...
성령님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이란 인식보다는 뭔가 특별한 힘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한 이적과 기적을 상상합니다.
그런 상상 아래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을 상상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성령에 의한 생활을 매번 울고 불고 기적과 이적을 체험하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실까요?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만지고 볼 수는 없지만 성령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이야기합니다.
‘성령은 찾고 말하고 증언하고 명령하고 계시하고 애쓰고 창조하고 중보 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신다’
요한복음 14장 25, 26절을 보겠습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즉 우리가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죄를 알게 하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하고, 죄를 짓지 않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죄를 지으면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은 성령 하나님에 지배받아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역사하시는 생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성령에 지배받는 생활'입니다.
성령 하나님에 의한, 성령 하나님에 지배받는 생활은 항상 성령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행하는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을 성령 하나님이 나를 완벽히, 언제든지 지배하는 것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까 '성령충만'에 대해서 누구 묻고 답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시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뜻은 성령의 기운이 넘쳐흐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기도했더니 아이디어도 넘쳐흐르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답이 바로바로 떠오르고, 이 상황에선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란 생각이 팍팍 떠오릅니다.
그리고 몸이 틀려집니다. 몸이 밝아집니다. 말 그대로 몸이 밝아집니다.
때론 몸이 뜨거워집니다. 마치 내 몸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집니다.
그럴 때 정신에선 뭔가 형통한 느낌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뭔가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 개운한 느낌?
이건 성령충만해본 사람만 이 알죠"
이상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비인격적이신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가장 큰 것 중에 하나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힘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체험을 중시합니다. 뭔가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을 중요시합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주술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영적인 존재입니다.
거룩한 영, 호흡이라는 의미로 창조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실제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충만은 그냥 기분이 아닙니다.
개운하고 맑고 기분 좋은 것이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생각합니다.
성령강림 사건을 생각하며 이적과 기적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오셨고 이제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만 할게 아니라 이제는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데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 하나님이 오시면 막 뛰고 뭔가 뜨겁고, 방언도 하고 이적과 기적 등을 행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증인이 되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임한 증인들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그 증인들 어떻게 되나요?
그냥 익숙한 말로 하면 '성령을 아주 가득가득 받은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고 고난을 받습니다.
죽임을 당합니다.
성령을 받았고 충만한 사람들인데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면 당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더 무서워해서 사람들 앞에 당당해집니다.
성령충만을 어떤 특별한 체험 그리고 한 순간에 반짝거리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고 말씀을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물론 이적과 기적, 특별한 은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더욱 중요한 것이 이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너무 평범한, 당연한 결론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생활!
즉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날마다 묵상하고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는 생활입니다.
내 삶에 모든 영역에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생활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성령 하나님께 완벽히 항복하는 삶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지배받는 생활을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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