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갈 수 없는 곳"

소리유리 2024. 2. 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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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병원에 왔다. 
순번이 길다. 
1시간 대기를 기다리다가 집으로 먼저 온다. 
첫째 학원이 늦었다. 
마침 공사차량이 앞을 막고 있다. 
마음이 급하다. 
바로 밑으로 내려오라고 첫째에게 말한다. 
 
속력을 좀 내서 학원에 시간 맞춰 간신히 도착한다. 
다시 병원으로 간다. 
그래도 이번엔 시간이 딱 맞았다. 
약국에서 나오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도착했다. 
 
둘째와 늦은 아침을 먹는다. 
반찬?
지난번 사다 놓은 어묵이 있다.
후다닥 어묵채 볶음을 한다. 
 
어제 약을 받으러 망원동에 갈 생각으로 시장치킨을 이야기했더니 잊지 않고 둘째가 말한다.  
밥은 간단하게 먹고 치킨을 사러 가자고 한다. 
걷는 거 싫어하는 둘째가 놀랍게도... 
밥은 조금만 먹고 갈 준비를 한다. 
 
뜬금없이 옛 곳을 둘째가 이야기한다. 
그곳에 연락하는 동생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시간 정해서 그곳에서 만나지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라고 말한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도 만나고 싶다고 한다.
똑같이 말해준다. 
이번엔 그곳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한다. 
 
둘째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태어나서 그곳만 다녔으니까...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좀 더 말해준다. 
그곳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말과 글을 했고...
그리고 어떤 불의, 부정, 거짓을 행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나와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을... 
 
둘째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쁜...'
둘째는 그곳, 그 사람과 연관이 별로 없다. 
그저 친구, 선생님이 보고 싶을 뿐이고 자신이 속한 곳이 생각났을 뿐이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이제 갈 수 없는 곳임을 말해준다. 
둘째가 그곳에 가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소문을 낼지 두렵다. 
그곳을 나와 열심히 준비하는 나에 대해, 나도 알지 못하는 소문도 많이 들었는데...
결과 후엔 가만히 있는 나를 원망하는 소리도 그 사람에게 들었는데... 
괜히 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 않다 
특히 아이들이 그런 것은 더욱더 싫다. 
 
둘째가 마음은 아니지만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것 같다. 
동생과 선생님은 시간을 정해서 다른 곳에서 보는 것으로 정한다.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갈 수 없는 곳임을 다시 잘 말해준다. 
 
속상해하고 슬퍼한다.  
어쩔 수없다.
나와 우리 가족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아니다. 
그곳과 그 사람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선택을 받지 못해도 마지막 인사하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었는데...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속이, 마음이 상한다. 
 
말을 돌린다. 
책가방을 세탁소에 맡기고 치킨을 사러 가자고 말한다. 
둘째 기분도 그렇고 치킨 꼭 사줘야 한다. 
준비하고 나왔다. 
학기 시작 전에 책가방을 세탁하기 위해 맡기고 망원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치킨에 미리 전화한다. 안 받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11시 30분에 시작이라고 하는데...
 
치킨집에 도착했다. 
사정이 있어 오늘과 내일 휴무라고 한다. 
시장 구경도 할 겸 다른 치킨 집을 찾아본다. 
 
살 만한 곳이 없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집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청년치킨'이 하나 있다는 것을 둘째가 생각해 낸다. 
의지의 딸이다! 
찾아갔다!
열었다. 
 

 
간장치킨을 좋아한다. 
후라이드와 반반을 시킨다. 
치킨을 들고 집에 도착했다. 
 
둘째가 갑자기 '가방!'이라고 말한다. 
아... 치킨이나 다른 것 사면 가방에 넣고 편하게 오려고 했는데...
가방은 둘째가 계속 매고 있었고 치킨은 손에 들고 왔다.
 
상관없다. 
이제 먹을 일만 남았다. 
한 마리는 둘이서 다 먹는다. 
아까 둘째와 실랑이(?)를 해선지 좀 피곤하다. 
잠시 쉬고 둘째 학원에 데려다준다. 
날이 좋다. 
 

 
집에 오자마자 늦은 산책길에 나선다. 
늦게 온 덕분인지 아름인도서관에 자리가 있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아직도 약간 찜찜함이 남아있다.
태어나서 20년을 다녔지만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아이들...
그저 그 사람의 욕심이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줬다. 
나도 우리 가족도 갈 수 없는 그곳... 
그래 그들만의 세상이다!
 
우린 그렇게 살지 말자. 
잘 살아보자. 
어둑어둑해진다. 
정리를 시작해야겠다. 
조금 어지럽혀진 오늘의 내 마음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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