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

"대표기도(2) - 말투"

소리유리 2024. 4. 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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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유입 키워드라는 것이 있다. 
대표기도로 검색해서 이 공간을 찾는 분들이 있다. 
그만큼 대표기도 순서를 맡았을 때 부담감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사임에도 심방 가서 대표로 기도하라고 하면 부담이 된다. 
사실 부담을 주는 것은 대표기도를 듣는 사람들 때문이다. 
순간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잠시 사라진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듣는 것은 회중들이다. 
 
그래서 좀 더 괜찮은 미사여구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미사여구의 대부분은 오래전 대표기도를 하신 분들에게 배운다. 
그 결과로 대표기도의 말투는 아주 오래된 말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말투, 어투라는 말은 '말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방식이나 느낌'이다. 
사람마다 말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방식이나 느낌이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표기도에 있어서는 거의 비슷한 말투를 사용한다. 
독특한 방식이나 느낌도 비슷하다. 
독특한 것이 비슷하다는 말은 분명 독특한 단어나 말투인데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독특한 방식과 느낌은 심하게 사극을 보는 듯하다. 
아주 오래된 말투와 단어를 사용한다.
전통적으로 대대로 내려온 것들을 재사용한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지만 말투를 보면 전혀 아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극에서 두루마리 종이를 펴고 선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주기도문을 본으로 대표기도를 생각하라고 한 것은 말투가 아니다. 
 
지금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은 지금의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현재 사용하는 단어와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맞다. 
 
대표기도문을 정성스럽게 작성했다면 그 단어와 특히 동사를 평상시 언어로 바꾸어보자. 
또한 바꿀 때 꾝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종종 듣는 이를 위한 설명을 길게 하거나, '해야 합니다'를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설명을 하는 듯이 말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또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렇게 할까?를 생각하면 좀 이상하게 들린다. 
'해야 합니다'도 그렇다. 
자신의 결의, 의지를 하나님께 이야기한다면 '하겠습니다'가 좋다. 
가르치듯이 또는 청중들에게 호소하듯이 하는 기도는 옳지 않다. 
 
한 장로님이 불만을 토로하는 기도를 들은 적이 있다.  
대놓고 불만 있는 담임목사와 성도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해야 합니다'를 연발했다. 
마치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심하게 선생님에게 혼나는 분위기였다. 
 
말투부터 바꿔보자.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자. 
바로 바꾸기는 힘들지만 해야 한다. 
 
물론 요즘 많이 바뀌는 추세도 있다. 
대표기도문을 찾아보니 일상의 언어로 많이 바꾼 기도도 보인다. 
여전히 '... 옵소서'는 많이 보인다. 
 
하나님은 옛 조상의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와 동시대에 동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한 번이라도 주변사람과 대화할 때, 혹 편지를 써도 '옵소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시 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도문을 작성할 때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기도문에는 자제하는 것이 옳다. 
오늘의 할 일은 대표기도문을 보며 말투를 바꾸는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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