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블루클럽에 있던 일이다.
사람이 없을 시간이라 생각하고 갔는데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학생이 눈에 띈다.
발달장애가 있어 보이는 덩치가 큰 학생이다.
불안한지 작은 가게 안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러지 않아도 작은 공간이 정신없다.
다른 사람 머리를 손질하는 미용사가 신경 쓰이는지 뒤돌아 보며 뭘 찾느냐며 묻는다.
말에 약간의 짜증이 담긴 듯하다.
자리에 앉은 학생은 큰 소리로 통화하기 시작한다.
바로 옆이라 안 들을 수 없다.
엄마에게 전화한다.
어떻게 잘라야 할지 물어보고 허락을 받기도 한다.
순서가 되어 학생은 자리에 앉는다.
미용사와 소통이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나갔다.
아내 덕분에 발달장애 아이들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저 특이하고 이상한 학생 그리고 꺼려지는 사람으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어제 본 발달장애 학생은 고의로 미용사를 괴롭히거나 짜증 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혼자 왔고 그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피할 뿐이다.

... 그 사람이 또 책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별다른 감정은 없다.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거나 가소로워서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
딱 그 웃음이다.
그곳에 있을 때 지인에게 그 사람의 책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지인은 아이들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
요전에 둘째에게 들었는데 지인이 내 소식을 듣고 책을 바로 버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메신저와 메시지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의 헛웃음은 '역시'였다.
양심, 가책, 사과, 용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가식적인 모습이다.
자신이 한 행동과 말이 있는데 무슨 책을 썼을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확실한 건 본인의 행동, 말과 정반대되는 글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식, 외식이다.
그 모습은 어제 본 발달장애 학생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발달장애가 있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학생에 비해 그 사람의 모습은 너무 가식, 가증스럽다.
사람들에게 특히 믿는 사람들 앞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거룩하게 보이려 하지만 진짜 모습은 전혀 다르다.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학생과 전혀 반대되는 그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생각할 수 없다.
겉모양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달라질 것은 없다.
지난번 아내가 묻는다.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람을 따르고 계속 그곳에 있을 수 있냐고...
물음에 한 마디로 답했다.
'그래도 되니까'
아무리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지금까지 다 통했기 때문에 또 책을 쓴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 편한지 생각하고 웬만하면 가만히 있는다.
굳이 변화를 꾀하거나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스리슬쩍 넘겨버린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교회의 현실!
이러한 현실 속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 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돌아서지 않는다.
아무리 이상한 모습이라도 말이다.
말과 행동이 달라도...
경건의 모양은 있고 능력은 부인해도 아무도 돌아서지 않는다.
그래서 '그래도 된다'가 나온다.
해도 되니까 계속하는 것이다.
오늘은 헛웃음과 함께 조금의 안쓰러움으로 마무리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