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로 부흥과개혁사에서 나온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 진리 20'(웨인 그루뎀)라는 책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3번째 시간으로 '삼위일체란 무엇인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리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 교리 중에서 가장 어려운 내용이 신론 즉 하나님에 대해 다루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부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보여주신 것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계시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불친절(?)함을 느낍니다.
이해와 설명보다는 일방적인 선포와 인정으로 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해로 통한 이성적, 합리적 설명이 아닌 단순한 열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저런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어떻게? 왜? 무엇으로?'라는 질문에 답해주지 않습니다.
사실 이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마치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고등수학, 물리 등을 가르쳐주는 것은 도리어 아이를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굳이 '삼위일체란 무엇인가?'를 설교해야 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인 부분을 미리 말씀드리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정확하게는 모른다'입니다.
또한 다른 답은 이성적, 합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열거'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구절들을 그냥 열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구절들이 우리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해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되지 않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삼위일체에 대해 오늘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기본적인 삼위일체 교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삼위일체와 관련된 이단이 역사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성적 범주 아래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중요한 이유는 '삼위일체는 가장 위대하고,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라고 수많은 신학자들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학자들의 말이 절대적이지 않지만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하나님을 연구한 사람들이 말하는 결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3장 16, 17절입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드러난 유명한 구절입니다.
성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십니다.
본문을 보면서 '아...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렇구나'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아멘'은 하지만, 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이라는 사실은 인식이 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이해하려면 혼란스럽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6〉 하나님의 신격에 몇 위가 계신가?
〈답〉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시다
신격, 삼위, 본체 등의 단어가 어렵데 다가옵니다.
본체는 하나인데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다는 말도 도통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오늘 이 문장을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어려운 교리를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그냥 '아멘'하고 믿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냥 '아멘'할 때까지 알아야 할 부분은 알아야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됩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씀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오늘 본문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 함께 등장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바울이 교회를 축복하기도 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더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이 정도로 소개하겠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구절은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구절들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무엇인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 교리 중에 가장 신비롭고 가장 어렵다고 말입니다.
이 교리는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사용합니다.
그 이성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수많은 설명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물이 '고체, 액체, 기체'가 되는 것, 여성이 '딸, 엄마, 아내'의 역할을 하는 것을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양태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단의 논리입니다.
또한 삼신론, 종속론, 양자론 등의 이단도 있습니다.
이런 쉽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그냥 인정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역할을 나누기도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선택하시며 구원의 계획을 세우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구원을 이루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장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구원을 인간에게 적용하십니다.
이것은 정통적으로 옳은 성경적 내용입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를 볼 때 삼위일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단도 나왔습니다.
혼란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해 간략하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것이 좀 전에 살펴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시다"
이 문장은 가장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 기록된 것을 열거한 것입니다.
설명이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한 내용을 이어 붙여서 오류가 없게 했지만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나왔습니다.
그냥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해는 못하지만 이 교리에 반하는 것은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완벽한 이해를 위한 문장이 아닌 조심해야 할 내용에 대한 문장입니다.
설교 끝에 참고로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소개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초대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입니다.
정통 기독교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특별히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호한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단인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맞서 정통 신앙을 수호한 인물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칼빈주의 신앙을 담고 있는 개신교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신조와 신앙고백서에서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이 또한 설명이 아닌 열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열거!
이것을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오늘 어려운 교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누군가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면 조심하십시오.
아니 멀리하셔야 합니다.
또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우리는 그냥 인정해야 합니다.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들을 인정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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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신조 전문
373년 교부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최초로 제시됨.
그리스도의 신인양성(神人兩性) 및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의 필연성을 간명하게 나타낸 신조로써, “구원을 바라는 자는 누구든지…”라는 라틴어 원문 ‘QUICUMQUE[퀴쿰케]…’를 따 퀴쿰케 신조라고도 한다.
본문은 4444개 조로 되어 있는데, 내용은 ‘칼케돈신조’의 삼위일체론을 더욱 명백히 한 것이다.
이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사건에 중점을 두고 있다.
1)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3) 이 신앙이란 다음의 것들이다. 삼위(三位)삼위(三位) 자체가 일체(一體)이시고, 일체(一體)일체(一體) 자체가 삼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4) 이 삼위는 혼합한 것도 아니요,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위)과 아들의 다른 인격(위), 또한 성령의 또 다른 인격(위)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격은 모두가 다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께서 창조함 받지 않으신 것 같이, 성자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조함 받지 않았다.
9) 성부께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신 것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10) 성부께서 영원하신 것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시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 영원한 분들이 아니시며, 한 영원한 분이다.
12) 창조되지도 않았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세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3) 성부께서 전능하시듯이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시다.
14) 그러나 세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한 하나님의 전능자가 있을 뿐이다.
15) 성부가 하나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16) 그럼에도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7)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주님이시다.
18) 그럼에도 주님이 세 주가 아니라 한 주이실 뿐이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삼위(三位)께서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20) 따라서 세 하나님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는 말은 참 기독교인으로서 금한다.
21) 성부는 그 무엇에서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니, 곧 창조함 받지도 않으시고, 나지도 않으셨다.
22) 성자는 성부에게서만 나시며,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내지셨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시고, 나오신 것이다.
24) 따라서 세 분 성부가 아닌 한 성부, 세 분 성자가 아닌 한 분 성자, 세 분 성령이 아닌 한 성령만이 계실 뿐이다.
25) 이 삼위에 있어서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의에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다.
26) 다만 삼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하다는 것이다.
27)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에서 삼위(三位)가 일체(一體)이시며, 일체(一體)가 삼위(三位)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28)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는 이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9)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에 대하여 올바로 믿어야 한다.
30) 올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31) 그는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자요,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그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시다.
32)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신다.
33) 신성으로서는 성부와 동등되나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으신 분이시다.
34)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시긴 하나 둘이 아니요, 한 분 그리스도이실 뿐이다.
35) 하나 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육신화 함으로써가 아니며) 인간의 몸을 취한(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음으로써)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36) 온전히 하나인데, 그 본질이 혼합된 분이 아니라 품격의 통일성으로 하나 되신 분이시다.
37)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듯이, 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 되신다.
38)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다.
39) 그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40) 거기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41) 그가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42)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판단을 받을 것이다.
4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나가고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4)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하여”
1.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분은 존재와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지극히 순수한 영이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몸이나 지체, 정욕이 없으시다.
그리고 변함이 없으시고, 광대하시고, 영원하시고, 능히 이해될 수 없으시고, 전능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자유하시고, 지극히 절대적이시다.
또 자기 자신의 변함없고 지극히 의로운 뜻으로 세우신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시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며, 지극히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으시고,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충만하시고, 사악과 범죄와 죄악을 용서하신다.
그분은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에 있어서 지극히 공의로우시고 두려우신 분이시고, 모든 죄를 미워하시고, 죄 있는 자를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은 원래 스스로 모든 생명, 영광, 선하심, 복되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원래 그 자체로 홀로 모든 것에 만족하셔서, 그분이 만드신 어떤 피조물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시며, 어떤 영광도 그들로부터 얻지 않으신다.
그러나 다만 자기 자신의 영광을 그들 안에, 그들에 의해, 그들에게, 그들 위에 나타내실 뿐이다. 그분은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만물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주권을 가지고 계셔서, 자기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그들에 의하여, 그들을 위하여, 그들 위에 행하신다.
만물은 그분 앞에서 숨김없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그분의 지식은 무한하고, 무오하고, 피조물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우연하거나 불확실하지 않다. 그분은 모든 계획, 모든 행사, 모든 명령에 있어서 지극히 거룩하시다.
그분은 천사와 사람,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예배, 섬김, 순종을 기꺼이 요구하시며, 그것들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3. 신격의 통일체 안에 동일한 본질, 능력, 영원성을 가진 세 위격이 계시는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시며, 누구에게서 나거나 나오지 않으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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