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

"그루터기 성도"

소리유리 2025. 9. 1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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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늘 밤공기가 어제보다 시원하지 않다. 

망원시장을 다녀오는 길... 땀이 나기 시작한다. 

물론 양손에 장본 것을 들고 있는 탓도 있다. 

 

 

카톡이 온다. 

기쁨나무교회 사모님이다. 

교회 뒤편 아파트 쪽에 교회에 대한 소개가 부족해 현수막을 붙이기로 했다. 

음.. 생각보다 작지만 그래도 좋다. 

 

주일에 광고를 했다. 

'그루터기 성도 모이기 운동'(가칭)

예배 후 대화시간을 통해 이름을 조금 수정해보기도 한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그루터기 성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와 비슷한 내용이 될 것 같다. 

 

'그루터기 성도'

당장 어떤 성도를 뜻하는지 확 다가오진 않는다. 

그루터기라는 말을 찾아보면 라이프성경사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초목을 베고 남은 부분. 나무의 밑둥치. 혹은 추수 후 들판이나 밭에 남은 풀이나 곡초.

성경에서는 비록 잘려나갔으나 다시 싹이 나는 그루터기의 특성에 빗대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았으나 영영히 멸망하지 않고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 ‘남은 자’를 상징한다(사 6:13; 47:14)"

 

그렇다.

'그루터기'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로 잘려나갔지만 멸망하지 않고 다시 싹이 나는 그루터기 같은 회복 가능성이 있는 '남은 자'를 말한다. 

'그루터기' 즉 '남은 자'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잘려나갔으니'가 아니라 '회복할 가능성'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선택할 때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 보다는 '상처와 어려움, 고통과 고난'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교회 인원이 급격히 줄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적다. 

교회를 다녀본 적 없는 사람도 있지만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꽤 있다. 

그중에 많은 부분은 흔히 말하는 가나안 성도, 온라인 성도가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 

그리고 내가 당한 것을 아는 '이미 당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충격적이다. 

그리고 공감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목회자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교회로의 복귀를 권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하나님은 믿고 나름 자신만의 신앙생활은 하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상처 입은 성도들이 많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교회에서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 

아물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교회에서 나와서 교회를 보며 세상보다 못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대형교회로 가서 출석만 하는 '아주 열심 있었던 성도'가 된다.

또한 흔히 말하는 가나안 성도, 온라인 성도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데 갖는 두려움은 시간에 비례하게 된다.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코로나 이후 예배를 온라인 송출하는 교회가 많다. 

우리 교회도 그렇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이 유튜브에서 자신의 신앙성향과 잘 맞는 설교를 고른다. 

그리고 온라인 예배를 최소한의 주일성수로 스스로 인정하고 온라인상에서 머문다. 

 

개인적으로 볼 때 지금 말한 성도들에 대한 공감 그리고 애정, 안타까움이 많다. 

내가 당한 일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더 진짜배기인 경우가 많다. 

진짜 그들이 '남은 자'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성도는 목회자 또는 교회 내의 부정, 거짓, 죄악을 봐도 잠시 분노 또는 고민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행동이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 중 많은 이들은 그 잘못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행동으로 보이고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탈출한 성도들도 있다. 

 

문제는 탈출하는 과정까지 가는 것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에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자신이 당한 상처로 인해 다른 교회, 목회자도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시간에 비례해 교회 출석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느긋하고 편해진 상황에 어느 순간부터는 시도하는 것 자체를 잊게 된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진 않다. 

도리어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싶다. 

분명 잘못된 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상황이 공감되고 다시 그들에게서 '회복'을 보고 싶다.  

그래서 그들을 '그루터기 성도'라 불러 본다.   

'회복할 가능성이 많은'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인 '남은 자' 즉 '그루터기 성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굳이 당장 교회에 와서 등록하고 예배드리지 않아도 된다. 

잠시는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해 회복하는 가운데 있길 소망한다. 

다만 '그루터기 성도'로 함께 지어져 가길 기대한다. 

 

최소한의 소속감을 주고 싶다. 

회복될 때 부담 없이 교회로 복귀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꼭 우리교회로 와서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잠시 '그루터기 성도'로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하려고 한다. 

예배당에는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함께 하는 성도다.

주일마다 예배 알림을 보내고, 수요설교 자료도 보낸다. 

온라인으로 신앙상담도 할 수 있다. 

또는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온라인 모임으로 신앙 나눔 시간도 갖는다. 

 

다시 말하지만 온라인상에서 함께 하는 성도가 종착점이 아니다. 

그루터기 성도는 잠시 정거장 같은 것으로 목적지는 당연히 교회로의 복귀다. 

온라인으로라도 잠시 정착하는 교회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려 한다. 

 

아직 계획이 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곧 시작할 생각이다. 

앞으로 주변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을 찾아 '그루터기 성도'로 등록시키려 한다. 

우리 교회가 '그루터기 성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사야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는 말씀처럼 '그루터기 성도'로 등록할 '거룩한 씨'들을 기다려본다.

또한 '그루터기 성도'들이 빠른 회복으로 인해 울창한 나무가 되길...  

그리고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에서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숲'을 이루어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