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 설교]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25) - 그리스도의 고난" (벧전 4:12~19)

소리유리 2026. 5. 13. 20:17

 

오늘도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의 질문과 내용을 살펴보며 설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입니다.    

 

개역개정 베드로전서 4장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난에 처한 교인들에게 목회자는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다음 주면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이 끝납니다.

그리고 지금 살펴보는 소주제는 '고난에 대하여'입니다.

지난주 고난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 그리고 다음 주까지 고난이 주제입니다.

 

고난은 항상 우리와 함께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같이 동행하고 싶지 않은 1순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질문이 등장합니다. 

 

질문은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라고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두 가지로 말씀드리면 '말'과 '행동'입니다.

이는 목회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입니다.

 

'말'로 위로하고, 조언해 주기도 합니다. 

또한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말과 행동'으로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목회자'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고난에 대한 성경적 설교를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해석을 전해야 합니다.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일들도 중요하지만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목회자가 감당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많은 성도들은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집니다.

이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목회자의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자체는 죄의 결과이지만, 그 고난이 항상 나의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회개하도록 말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로 인해 당하는 고난도 있고, 자연재해로 인해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리고 욥이 당한 고난처럼 도무지 영문을 모를 고난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고난을 너무 단순화하거나, 명확한 해석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확실한 고난의 의미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목회자가 단언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아니 되도록 '하나님을 뜻'이라는 말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을 때는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닥쳐올 때 내 주변 사람이 내게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한다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고난'이라는 주제는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문제입니다. 

그것도 가능하면 고난 전에 미리 훈련하고 연단해야 합니다. 

반복된 훈련과 인식을 통해 고난이 닥쳐올 때 바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고난을 견디고, 버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오래 참음'입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께 가장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 하나님의 침묵은 내게 무관심한 하나님으로 느껴집니다. 

침묵은 무관심으로 연결되고 무관심은 불만과 불평으로, 불만과 불평은 불신앙으로까지 확대됩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아는 확실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결코 나에 대한 방관이 아님을 누구보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기초로 오늘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놀라운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로 시작하는 것부터 놀랍습니다. 

고난으로 우울하고 절망에 빠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오래된 침묵으로 하나님께 기대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금 당하는 '불 시험'을 이상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12절에서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은 생각조차 하기 싫고 힘들지만, 지나온 고난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을 겪기 전과 겪은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 고난이 나를 연단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3절로 넘어갑니다.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으로 숨 막혀 있는 내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한 마디로 하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한 고난은 내게 원인이 있고, 내가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살고 있는데 고난이 닥칩니다.

그 원인이 내게 없고, 다른 이나 환경 또는 나는 모르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은 나를 연단시키는 고난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서 살고 있다면 그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4~16절입니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어떠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임을 우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난에 대해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직접적인 교회와 연관된 생활, 전도하다가 당하는 어려움 등으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살펴본 것처럼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이런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에도 고난을 받으면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 18절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가 비교됩니다. 

순종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 고난에 참여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 참여하지 않으면 겨우 구원을 받는 의인, 경건하지 아니한 자, 죄인과 비교됩니다. 

1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오늘 읽은 본문 중에 가장 어려운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중인데,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라고 결론짓습니다. 

우리말성경으로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19 그러므로 하나님  따라 고난  사람들 계속 선한  행하 가운데 자기 영혼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기십시오.

 

고난을 받는 사람은 계속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합니다. 

이 의지라는 단어는 '고난을 내가 받지만 그래도 하나님 말대로 선한 일을 계속합니다. 아무튼 앞으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시오'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고난을 당하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당하라는 것입니다. 

똑같이 당하는 고난이라도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와 함께 갑니다. 

그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오늘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을 살펴보았습니다. 

고난에 참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다른 이들과 똑같은 고난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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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1. 어떻게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나의 말로 이야기해 봅시다. 

 

2. 내가 이전에 당한 고난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봅시다. 

     

오늘 설교를 생각하며 찬양을 듣겠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입니다.   

 

https://youtu.be/Wxp2h2a9P34?si=7zq0zpTzEuvqMxdq

 

 

아무것도 두려워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지라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세상에 험한 풍파 몰아칠 때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