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 설교로 계속해서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의 질문과 내용을 살펴보며 설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마태복음 5장 13~16절입니다.
13.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다시 짜게 되겠느냐? 아무 데도 쓸데가 없어 바깥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15. 등잔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어 그 빛을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16.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교회가, 특히 목회자가 성경의 원칙을 상기하고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면,
적용은 모든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언급하기 힘든 무척 곤란한 질문입니다.
특히 오늘의 현실에 아주 예민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질문의 내용을 보면 질문자는 목회자와 성도의 역할을 구분 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경의 원칙을 상기하고 가르치는 것!
성도는 삶의 현장에서 씨름하는 과정에서 말씀을 적용하는 것!
그리고 이 개념 아래 '정치적 발언'을 언급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에서 질문자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만으로 질문자의 생각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설교를 이어가기 위해 이렇게 추측해 보겠습니다.
질문자는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대한 삶의 적용은 성도가 해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성도가 삶에 적용하는 영역이지,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정치적 발언, 선동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비난과 분열,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정치적 발언, 선동 등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가르침과 적용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성경의 원칙들을 가르치는 것을 주로 하고, 성도는 삶 속에서 그 원칙들을 적용하는 것이 틀리다는 말은 아닙니다.
원칙은 근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의미합니다.
목회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규칙과 법칙을 연구하고 성도에게 가르쳐야 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성경의 원칙들을 현실의 상황과 전혀 무관하게 추상적 관념만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추상적 관념, 원칙만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이중계명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 말씀하시며, 비유로 제자들과 청중들에게 말씀하시며 이해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실에 밀접한 내용도 언급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도 우리가 '적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어디까지가 원칙이고 적용인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성경에서 원칙을 말하고 그 적용까지 언급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성경의 원칙을 이야기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 옳은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옳지 않습니다.
'정치적 발언'의 의미를 AI에 물어보면 이렇게 답합니다.
사회적 의사결정이나 권력관계, 특정 이념 및 정책에 관한 견해를 표명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의 중립 의무, 교육 현장에서의 발언 가이드라인, 그리고 일상생활 속 정치적 대화의 에티켓 등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견해를 표명하는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직자, 교육 현장, 일상생활 속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설교해서도 안 됩니다.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절대적인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쟁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성경과 무관한 자신의 생각, 견해,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을 말하면 그것은 더 이상 설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이야기,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이야기를 교회에서 그것도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해 하는 것은 설교자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어조가 좀 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며 심각하게 생각할 영역입니다.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하는 목회자로 이는 결격사유가 됩니다.
목회자로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설교 시간에 정치적 발언은 금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또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여전히 통치하시고 간섭하시며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고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으로 인해 창조된 모든 영역이 타락했습니다.
예전에 설교했지만 그 타락의 범위는 창조된 모든 영역입니다.
사람, 동물 등 눈에 보이는 영역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도 포함됩니다.
창조 질서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결혼, 가정, 사회, 국가, 학교 그리고 정치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청지기인 우리는 세상을 구속, 회복시키고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잘 다스리고 회복해야 할 영역은 창조된 모든 것, 타락한 모든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정치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발언'도 설교에서 언급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과 방향 그리고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들이 성경적으로 분명히 맞는지 살펴보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절대적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적 기준 아래, 기독교 세계관에 비추어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그 목적도 특정한 사람, 정당과 그룹을 지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 기준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영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청지기로 온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땅의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입니다.
소금과 빛 앞에 '세상'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만 있는 곳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 썩어가고 어두운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짠맛을 내야 하고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16.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절에서 '선한 행실'이 등장합니다.
선한 행실은 내가 속한 영역에서 내가 보여야 할 행위입니다.
나를 보고 계시는 하늘의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정도의 선한 행위입니다.
이 목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 성경에 비추어 회복할 영역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영역이 정치적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누구를 미워하고, 정당을 싫어하고, 내 주장을 성도들에게 이야기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아주 민감한 부분이며 오해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목회자는 되도록 민감하게 생각하는 정치적인 이슈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영역임은 분명합니다.
성경적인 정치라고 하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은 세상의 모든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합니다.
문화, 예술, 기업, 학교, 결혼, 경제,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한 부분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정치가, 판사, 기업가, 교사 등 모든 직업에서도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성경적인 직업의식과 윤리를 보여야 합니다.
오늘 어려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만 갇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향해 '선한 행실'을 보여야 하는 청지기임을 꼭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선한 행실의 영역은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회복과 구속이 필요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온전한 일꾼들이 되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
묵상 & 기도
1. 기독교 세계관 아래서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 영역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속한 영역, 즉 가정, 사회, 학교, 인간관계 등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수 있도록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오늘 설교를 생각하며 찬양을 듣겠습니다.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입니다.
https://youtu.be/mxPWcOWgTjk?si=_Z9JSEdPPqn0OmxB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내 의라 말할 수 없는 이 곳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세상은 항상 말하네 그길이 아니라고
곱디 고운 길이 있는데 왜 힘들게 사냐고
단순한 선택조차 내겐 버겁기만 한곳
그래도 나는 주님만 따르리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더 깊도다 더 깊도다
나는 계속 걸어 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오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요 설교] "아브라함 대신 하나님이..." (창 22:4~14) (1) | 2026.03.18 |
|---|---|
| [3월 15일 주일 설교] "엘리바스의 신앙 철학" (욥 4:1~11) (0) | 2026.03.15 |
| [3월 8일 주일 설교] "어찌하여" (욥 3:20~26) (0) | 2026.03.08 |
| [수요 설교]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18) - 하나님 나라" (행 1:3) (0) | 2026.03.04 |
| [3월 1일 주일 설교] "그 후에" (욥 2:11~3:1) (0) | 202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