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 설교]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13) - 착한 행실을 보이라" (마 5:13~16)

소리유리 2025. 12. 1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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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 주제를 따라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 13~16절입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개독교'로 불리며 모욕받고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맛 잃은 소금', '마태복음 5장 13절'이 지난주 제목과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 13~16절까지 살펴봅니다. 

주제도 비슷한 주제입니다. 

 

질문은 아주 강하게 다가옵니다. 

특별히 '개독교'라는 단어가 등장해 인상을 찌푸리게 합니다. 

'개독교'에 대해 구글 제미나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개독교'는 대한민국에서 일부 개신교와 특정 신자들의 부정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비하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멸칭이자 신조어입니다. 접두사 '개-'는 '개 같은' 또는 '개념을 상실한'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개 같은 기독교" 또는 "개념을 밥에 말아먹은 기독교"라는 경멸적인 뜻을 내포합니다."

 

아주 부정적인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기분 나쁜 단어입니다. 

왜 이런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줍니다. 

 

[발생 원인 및 사회적 인식]

이 용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확산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한국 개신교 일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1. 목회자 및 교회의 비리 : 대형 교회 세습 문제, 목회자의 성범죄 및 비윤리적인 행동 등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비판이 거세졌습니다.

2. 사회적 갈등 유발 :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이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극우 정치 세력과 결탁하거나, 동성애 반대 운동 등에서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펼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3. 타 종교 및 비신자에 대한 배려 부족 :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독선적인 태도, 과도한 전도 방식 등이 비기독교인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4. 언행 불일치 :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현실 교회와 신자들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진실성 결여, 이기주의 등) 이 큰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안티 기독교' 운동이 형성되었고, '개독교'라는 용어는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왜 그런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 수는 있습니다. 

배경에 대한 설명 중 1번과 4번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용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통해 보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실제 모습이 너무나 차이가 날 때에 우리는 모욕당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욕을 먹습니다. 

세상에서 교회에 손가락질하고 비리를 보도하면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 손가락을 세상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못은 했지만 너희들은 어때?

우리가 그래도 너희보다는 낫지 않아?

우리가 잘한 것도 많은데 왜 잘못한 것만 말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많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목회자들도 많이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 지적하는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을 지적하는 그들의 잘잘못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적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싸울 수는 있습니다. 

누가 더 옳으냐 또는 누가 더 잘못을 크게 했느냐의 다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툼에서 이긴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기준으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을!

'세상 사람들에 비해 이 정도면 난 괜찮아'가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어떤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지적하는 그들의 잘못이나 그들의 태도를 지적하지 말고 그 내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질문을 보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개독교'로 불리며 모욕받고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지적하며 모욕하는 그들을 보지 말고 그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교회 내에서 적극적 활동을 하고 외부적으로 선교와 전도에 힘썼습니다. 

 

오늘 본문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3~15절입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소금과 빛에 대한 구절을 너무 한정해서 생각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선교와 전도로 직결합니다. 

하지만 그다음 구절을 보면 그것이 틀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입니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 착한 행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빛과 소금'에 대한 전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자'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앞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빛과 소금이다'가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 존재 자체가 빛과 소금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존재로 인해 그 정체성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빛이고 소금입니다.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이 '너희 착한 행실'입니다. 

이에 대해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으로 그러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예수님은 착한 행실을 언급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선한 행동이란 필수적으로 나타나야 할 특성이자 본질이다. 

만약 선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그런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제자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세상 사람
들에게도 짓밟힐 수밖에 없는 맛을 잃은 소금 빛을 빼앗긴 빛이 되고 만다. 

예수님을 믿음과 예수님께서 요구하는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늘 함께 붙어 다니는 두 개념이다."

 

선한 행동은 빛과 소금이기에 나타나야 할 특성이지 본질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선한 행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합니다. 

이 선한 행위는 전도, 선교, 성경 읽기 등의 모습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16절을 보겠습니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입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우리의 빛과 소금의 정체성으로 인해 놀라움을 갖게 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개독교'라는 말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도리어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부패, 갈등, 고난 등으로 가득 찬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도 우리의 당연한 일입니다. 

기독교세계관은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모든 피조세계를 구원받은 우리가 또한 구원해야 합니다. 

구원해야 할 대상은 사회, 문화, 정치, 가정 등 모든 영역입니다. 

책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의 순종'을 하도록 하는 것,

온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통치를 받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데, 

그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려면 교회는 먼저 소금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어서 말합니다. 

 

"성도들은 소극적인 경건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앙생활을 주일성수, 헌금, 전도하기, 술 담배나 음행 안 하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집착과 같은 것이다."

 

소극적인 경건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며 말합니다. 

적극 동의합니다. 

빛과 소금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소극적인 신앙이 아닌 적극적인 신앙생활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준으로 '영향'이라는 단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영향을 주고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생활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나만의 경건 생활로 그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나의 신앙생활은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과 빛이기에 존재 자체로 영향을 끼치는 생활이 진정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해결방법은 바로 빛과 소금으로 살며 '착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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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교재에 있는 적용과 기도를 이곳에 올립니다)

1.  소금의 역할은 세상에서 발휘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소금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소금은 그 존재 자체로 세상에서 구분, 구별되어야 합니다. 내가 소금으로 그 맛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 오늘 주제와 관련된 노래를 감상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조수아  '축복의 통로'입니다.   

 

https://youtu.be/3Mq17zCUaZo?si=9smw72nPxS_IjZul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