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 설교] "우리가 언제?" (마 25:31~46)

소리유리 2026. 6. 3. 16:40

 

오늘은 6.3 지방선거입니다. 

선거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를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늘나라의 국민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하는 '믿음을 보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더욱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매일 묵상하는 본문을 이어서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입니다.    

조금 길지만 우리말성경 버전으로 보겠습니다.


우리말성경 마태복음 25장
31. “인자가 그의 영광 가운데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의 영광의 보좌 위에 앉을 것이다.
32. 모든 민족들이 그 앞에 모이게 되고, 목자가 염소 중에서 양을 가려내듯이 인자는 그들을 둘로 갈라
33.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그 왼쪽에 둘 것이다.
34. 그때 그 왕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리 와서 세상의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해 마련해 두신 나라를 상속하라.
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나를 맞아들였다.
36.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봐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 주었다.’
37. 그때 의인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여, 언제 주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먹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께서 목마르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맞아들였으며 언제 주께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우리가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40.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41. 그러고 나서 왕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사람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43.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
44. 그들 역시 대답할 것이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배고프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시거나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돌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46.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벌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

오늘의 본문을 '양과 염소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최후의 심판을 생각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또한 구원에 대한 논란도 있기도 한 본문입니다. 

 

46절에 영원한 벌과 영원한 생명이 언급되고 있고, 앞부분에서 행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둘을 연관 지어 행위로 인한 구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초점은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비유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첫 번째입니다. 

종종 뜻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시기도 했지만 주된 이유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 

하지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겐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유에 대한 오해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텍스트의 표면적인 문자적 의미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상징적,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해석 방법입니다. 

 

성경의 비유를 이 풍유적 해석의 방법으로 신비롭고 영적인 것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누가 네 이웃인가?'의 본래 말씀하시는 의도 보다 과도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풍유적 해석으로 '사마리아인은 '예수', 강도 만난 자는 '죄인', 주막은 '교회', 데나리온 둘은 '신구약 성경'  등으로 모든 요소에 억지 상징을 대입합니다. 

옳지 못한 방법입니다. 

물론 성경의 비유가 상직적 의미를 의도한 경우는 그 방법이 옳습니다. 

하지만 모든 비유를 풍유적 해석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많은 이들이 명확한 비유의 해석을 듣고 그 영적 의미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비유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어떤 의도를 말하고 있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비유의 초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꽉 붙잡고 있지 않으면 다른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비유는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모이고 목자가 염소 중에서 양을 가려내어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그 왼쪽에 둔다고 말씀합니다. 

양은 의인, 염소는 저주받은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의인과 저주 받은 사람이 구별되는 기준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35, 36절입니다. 

 

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나를 맞아들였다.
36.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봐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 주었다.’

 

'배고플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기준입니다. 

보살펴 준 편이 오른쪽에 있는 양, 보살피지 않은 편이 왼쪽에 있는 염소입니다. 

의인과 저주받은 사람으로 판정하기엔 그 일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겨우 그걸로?'가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행위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행위는 필연적 열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를 오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입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행함은 당연한 결과라는 말입니다. 

행함은 필연적 결과, 열매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입니다. 

구원은 받았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화' 구원을 계속 이루어가야 하고, '영화' 즉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성화 즉 현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칭찬받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7~39절입니다. 

 

37. 그때 의인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여, 언제 주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먹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께서 목마르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맞아들였으며 언제 주께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우리가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의인들이 묻습니다. 

설교제목입니다. '우리가 언제요?'

본인들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는 왼쪽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0절과 45절입니다. 

 

40.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45.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또는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한 것 또는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밌는 것은 양쪽 다 기억못합니다. 

아니 기억할 만큼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이는 아주 작고, 일상적이고,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일입니다. 

믿음생활이란 믿음이 생활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믿음이 생활이 되어 생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시기 위해 무진 애를 쓰신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보면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등장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구약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또는 억지로 하는 것들이 많은데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칭찬해 주십니다. 

아마 그 자리에 본인이 있다면 민망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양, 의인은 민망할 것입니다. 

기억도 나지 않은 일에 하나님이 칭찬하신다면 우리도 같은 반응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믿음의 실천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을 찾아서라도 칭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과 행함있는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동전을 보고 '동전 앞면이다, 동전 뒷면이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동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다! 구원받고 행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구분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며 삶에서 그 구원을 드러내야 합니다. 

구원받고, 구원받으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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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1. 나의 믿음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내 주변의 약한 자들에게 나는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행함있는 구원의 모습을 보여줍시다!

     

오늘 설교를 생각하며 찬양을 듣겠습니다. '경ㄱ'입니다.   

 

https://youtu.be/GZSv0gsPcVw?si=ajraXLBdFeenUa7C

 

 

천국의 소망 품은 당신은 주님 앞에 설 바로 당신은
그의 편지로 이 땅에 보내신 주의 손과 발 작은 예수


주님 앞에서 흠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삶 나누는 것
주 이름으로 사랑을 전할 때 아름다운 주의 나라 이뤄지네


우리의 손은 예수님의 손 우리의 얼굴 바로 주님 얼굴
우리의 소유 모두 주님의 것 이웃을 위해 맡기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