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의 질문과 내용을 살펴보며 설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요한복음 3장 13~17절입니다.
개역개정 요한복음 20장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최근 신약학계에서 신약성경을 반로마황제 숭배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각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챕터는 '목회자와 한국 교회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질문들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질문이 그렇습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반로마황제 숭배의 관점'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사실 신약학계의 관점에 대해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들이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목회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반로마황제 숭배의 관점', '바울의 로마제국에 대한 태도'를 살피지는 않습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바울은 반로마황제 숭배의 관점에서 성경을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황제 숭배에 대해 우상숭배를 피하라는 일반적인 가르침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으로 서신서들을 적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로마제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3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통치자들을 존경하고 복종하며 그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바치라는 가르침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해방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흑인여성신학, 생태해방신학, 퀴어신학, 과정신학 등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신학을 한 주제 또는 부류에 맞추는 신학들의 이름입니다.
즉 한 주제에 대하여 성경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찾아서 체계화하는 신학입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신학을 크게 분류하면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성경신학은 성경을, 역사신학은 기독교 역사를 연구합니다.
실천신학은 예배, 설교, 상담, 선교, 윤리 등 실제 목회 현장에 대한 연구합니다.
그리고 조직신학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주제벌로 체계화하고 교리를 확립하는 학문입니다.
조직신학은 주제별로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의 핵심교리를 다룹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찾고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학문이 신론입니다.
동일하게 성경에서 구원에 대해 찾고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학문이 구원론입니다.
기본적으로 조직신학을 통해 핵심교리를 연구하고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그 외의 다른 것들을 연구하고 신학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신학들에 대해 AI는 이렇게 답해줍니다.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은 1960년대 말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난과 억압의 구조적 불의에 저항하며 등장한 진보적 기독교 신학 운동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예수의 복음을 근거로, 구조적 악과 불평등에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의 핵심으로 보고 사회·정치적 변혁을 강조합니다.
여성신학은 가부장적인 전통과 성차별적인 성서 해석에서 벗어나,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을 성찰하고 성평등과 인간화를 지향하는 학문적/실천적 운동입니다. 1960년대 이후 여성해방운동의 배경 하에 교회와 사회 내 억압적 구조를 비판하며, 남녀의 상호 파트너십을 통한 새로운 신학적 전망을 제시합니다.
민중신학은 1970년대 대한민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억압 상황 속에서 탄생한 자생적 기독교 신학입니다. 서구의 관념적인 신학에서 벗어나, 고난 받는 민중의 현장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핵심입니다.
퀴어신학(Queer Theology)은 성소수자(LGBTQIA+)의 경험과 실존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전통적인 신학 담론을 재구성하는 신학적 흐름입니다.
한 주제를 정하고 성경에서 그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찾는 것은 조직신학과 유사한 과정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의 목적이 조직신학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신학, 조직신학은 결국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작업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성경신학은 성경 본문을 따라가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귀납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고, 조직신학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별로 교리를 정리해 가는 연역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둘 다 귀납적, 연역적 방법을 함께 사용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조금 전에 열거한 신학들의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합니다.
신학이라는 이름 앞에 내가 원하는 것을 붙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무슨 신학, 무슨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그 내용이 전적으로 모두 다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용인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성경을 내가 주장하는 것에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뜻대로 그 환경에서 살아가며 주장하는 것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무엇보다 목적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차이가 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경을 기록하는 목적이 언급됩니다.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과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목적대로 내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주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좀 더 쉽게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내가 하나님 편인지, 하나님이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들이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내 주장, 내 생각, 내 판단에 하나님의 뜻과 이름을 붙여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굳이 '신학'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고 적용할 것들을 내 삶의 현장에서 말하고 주장하고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해방신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는 약자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힘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조적 악과 불평등에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의 핵심을 볼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들이 타락으로 인해 오염된 사회의 구조적 악과 불평등을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신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등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기독교 세계관 아래 어떻게 우리가 구속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굳이 신학을 붙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내 주장을 하기 위해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속시키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그 가운데 국가, 사회, 남성과 여성, 결혼, 가정, 학교 등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이를 위해 쓰였음을 우리가 잊지 말고, 내가 속해있는 영역에서 하나님 편으로 살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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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1.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 기준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봅시다.
2. 내가 속한 영역에서 하나님 말씀을 적용할 구체적 부분들을 찾아보고 실천해봅시다.
오늘 설교를 생각하며 찬양을 듣겠습니다. '삶으로'입니다.
https://youtu.be/gU4do32SrLg?si=ObiMxYYQQxMvpf8l
세상의 부와 세상의 명예 세상 자랑 모두 내려놓고
날 구한 십자가 날 씻긴 보혈 주의 은혜를 깊이 생각합니다
나의 나 된 것 내 모든 것 다 거저 받은 선물
내 삶을 은혜로 가득 채워주셨네
나의 나 된 것 내 모든 것 다 거저 받은 선물
내 삶을 주신 분께 다시 올려드리니
나는 삶으로 주님을 노래합니다
나를 통하여 주님만 높임 받으소서
나는 삶으로 주님을 예배합니다
나의 삶을 빛으로 사용하소서
나는 삶으로 주님을 노래합니다
나를 통하여 주님만 높임 받으소서
나는 삶으로 주님을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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