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해서 수요설교는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 주제에 따라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9편 7, 8절입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유다복음서>에 관한 기사와 <다빈치코드> 출판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질문이 조금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역사적 예수'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가 아닐 뿐 아니라 교회에서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접하는 단어도 아닙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쟁은 오래되어 왔습니다.
이 시간 이 논쟁에 대해 길게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개념적인 측면에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 AI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란 신학적인 교리나 신앙의 대상을 넘어, 1세기 팔레스타인이라는 실제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살았던 '인간 예수'를 학문적으로 재구성한 개념입니다.
1. 핵심 개념: '신앙의 그리스도'와 어떻게 다른가?
학계에서는 예수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신앙의 그리스도: 성경과 교회가 고백하는 신성한 구세주이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역사적 예수: 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해 복음서의 신학적 해석을 걷어내고, 당시 유대 사회의 맥락에서 분석한 실존 인물로서의 예수입니다.
2.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는 것들
현대 역사학계의 대다수 학자들은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에 동의하며, 최소한 다음의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나사렛 출신 유대인: 1세기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한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 그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봅니다.
십자가형으로 처형됨: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습니다.
3. 왜 이런 연구를 하나요?
사료 비판: 마태·마가·누가복음 등은 예수 사후 수십 년 뒤에 기록되었으므로, 기록자의 신학적 의도가 섞여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비신화화: 기적이나 부활 같은 초자연적 현상은 역사학적 증명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이를 상징이나 신학적 장치로 해석하고 그 이면의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 합니다.
시대적 배경: 예수를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그의 가르침이 가진 본래 의미를 파악하려 합니다.
좀 길지만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신학적인 교리, 신앙을 역사적 시공간 속에 살았던 학문적인 것과 비교합니다.
뭐가 다르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시각입니다.
쉽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교리, 신앙은 이 시대의 말로 하면 비합리적, 비이성적인 개념입니다.
학문적인 역사적 개념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과 교회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와 분석하고 비판하여 객관화한 그리스도는 차이가 납니다.
역사적으로, 학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입니다.
그들이 인정하는 것은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며 나사렛 출신 유대인 랍비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 처형된 객관적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적, 부활 같은 초자연적 현상은 증명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적이나 부활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자체를 다루지 않습니다.
학문적 도구로는 기적이나 부활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 전제입니다.
역사적 예수 개념은 위험합니다.
말은 좋습니다.
확연히 드러난 사실, 역사만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하나님, 예수님의 행한 모든 것은 자기 구미에 맞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기준이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나'입니다.
심사, 판단, 분석은 더 높은 수준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시고 계획하신 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적, 기적, 부활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만 즉 계시해 주시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추종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언급된 '유다 복음서, 다빈치코드'같은 내용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마치 고증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며 이것이 진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또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퍼트리는 일들이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현대에 와서 각광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위경, 외경, 정경'에 대해 오늘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개념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도 AI의 도움을 받아보겠습니다.


위의 내용을 잘 읽어보셨겠지만 정리하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순서대로 먼저 정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66권의 성경을 말합니다.
신앙의 절대적 표준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정경만을 인정합니다.
외경이 있습니다.
외경은 역사적, 도덕적 가치는 있지만 정경만큼 권위는 없습니다.
가톨릭이나 정교회는 외경까지 정경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위경이 있습니다.
위경은 가경이라고도 합니다.
한 마디로 가짜입니다.
가짜인 만큼 드라마틱합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때에 쓰인 또는 그 후에 시간이 조금 지나서 쓰인 가짜들이 현대에 진짜처럼 취급받습니다.
신학적으로 위경, 가경들은 연구가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유다 복음서, 도마 복음서 등 현대에 흥미를 끌고 이것이 더 진짜처럼 주장을 하지만 예전에 신학자들로 인해 다 연구되고 판단된 것들입니다.
책에서 이런 언급을 합니다.
"... 그러나 그것은 신학자들이 얼마나 엄격한 학문성을 가지고 예수와 성경을 연구하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신학자들은 구약과 유대교 문서들, 헬라종교사적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 역사도 면밀히 살피며 연구한다.
일반적으로 성경학자들은 성경을 고전학자들이 헬라-라틴 고전문서나 역사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다룬다.
그래서 고전학자들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자료를 지나친 의구심을 가지고 대한다고 비판할 정도이다"
성경학자들이 엄격하게 자료들을 검토합니다.
그래서 위경, 외경, 정경으로 나누어놨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흥미로운 위경에 가는 것도 있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굳이 성경학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숨길 것은 없습니다.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미를 끄는 유다 복음, 도마 복음, 다빈치코드 같은 이야기에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위경, 가경, 특정한 이름을 붙인 사본과 복음, 소설 등은 계속해서 시대마다 나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발견했다, 이것이 진짜다, 숨겨진 이야기' 등으로 포장해도 정경의 근본적 역사성을 신뢰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신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9편 7, 8절을 보겠습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은 모두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완전, 확실, 정직, 순결합니다.
또한 영혼을 소성시키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경인 성경 외의 다른 것들을 자꾸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위경, 가경뿐만 아니라 심리학을 비롯한 성경을 대체할 다른 프로그램들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더 소중하게 그리고 가장 가까이 두어 날마다 묵상하셔야 합니다.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성경 외에 다른 것들에 절대로 현혹되지 않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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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교재에 있는 적용과 기도를 이곳에 올립니다)
1. 정경, 외경, 위경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합시다. 간단하게 누군가에게 설명하듯이 정리해 봅시다.
2. 성경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고 있나요? 하나님 말씀을 더 소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날마다 묵상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 설교를 생각하며 찬양을 듣겠습니다.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입니다.
https://youtu.be/T5xHJeK7EfM?si=lt9IFfE_T9G_9jVt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세상은 변해가고 소망은 힘을 잃어도
변함없이 붙드시는 그 구원의 손길
폭풍이 몰려와도 두려움 물러가네
우릴 위해 싸우시는 그 손을 의지해
이 세상 어디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바래왔고 꿈꿔왔던 미래가
그 한없는 사랑 안에서 열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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