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2026년 교회 주제인 '내 믿음을 보이리라' 설교입니다.
주일설교 4번, 수요설교 3번 그리고 오늘 설교까지 총 8번째 설교입니다.
그리고 오늘로 주제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살펴볼 본문은 마태복음 7장 1~5절입니다.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말씀을 읽으면 비판받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먼저 '비판'이라는 단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판'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실, 사상, 행동의 진위(眞僞), 선악, 장단점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의를 보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비판'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느낄 때는 '비난'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비판'(批判)은 공정하게 잘잘못을 따져 지적하는 것이라면, '비난'(非難)은 감정적으로 남의 흠이나 잘못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비판은 해도 되는가?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비판은 좀 다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에서 비판은 잘잘못을 따져 지적하고 평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거만한 태도로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것, 사랑 없이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중요한 특성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상대방을 돕기 위해 하는 것은 권고이며 이 권고에는 겸손을 내포합니다.
그것은 거만하지 않고 상대방을 낮추어 자신을 돋보이게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본문에서 말하는 비판은 상대방을 낮추고 나를 돋보이며, 상대방에 대한 사랑, 배려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우월감을 높이고 내가 옳다는 것을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으로 시작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1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앞뒤 문맥이 바뀌었지만 두 문맥을 동일선 상에 두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합니다.
6장 12절입니다.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쉽게 넘어가기 힘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왜냐하면 내 죄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상대방의 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강하게 다가옵니다.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비판하지 맙시다'가 아닌 그 비판이 내게 적용될 때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게 뭐?'라고 쉽게 넘기지 마십시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입장 바꿔 생각해 봐'입니다.
상대방을 낮추고, 상대방을 위한 조언과 도움이 아닌 나를 더 드러나고 상대방을 열등감에 빠뜨리기 위한 목적의 비판!
그것을 내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2절입니다.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대로 내가 한 비판 그대로 당합니다.
'사랑이 없는' 비판을 넘어선 비난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저는 결코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 사람, 섬김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그 비판으로 내가 우월해지고 상대방이 열등감에 빠진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비판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인지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판단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3~5절입니다.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리스도인들 중에 설교말씀을 들으며 지적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주변에 가장 그 말씀이 적용될 사람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에 집중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으면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를 찾습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고, 지적함으로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임을 보입니다.
아주 위험한 모습입니다.
먼저 나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알고 보면 내 눈 속엔 들보가, 상대방의 눈엔 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올해 주제가 '내 믿음을 보이리라'입니다.
처음에 주제로 고민하며 '믿음을 보이라'를 정하려고 하다가 급선회해서 '내 믿음을 보이리라'로 변경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누군가 '너는 이제 믿음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가 믿음을 보이겠다'라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에 정했습니다.
명령이 아닌 결심과 결단 그리고 다짐을 요구하는 주제입니다.
상대방의 티를 열심히 찾을 것이 아니라 내 눈의 들보를 찾고 빼내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랑과 겸손, 배려와 섬김을 가지고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야 합니다.
지적이 아닌 상대방의 티를 빼기 위해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주제설교 마지막은 주제를 정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을 말씀드립니다.
'보이라'가 아니라 '보이리라'로 정한 이유입니다.
상대방의 '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 눈의 '들보'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나의 옳음을 통해 나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열등감에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믿음이 행함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고 내가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2026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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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교재에 있는 적용과 기도를 이곳에 올립니다)
1.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기 위해 먼저 나를 돌아봅시다. 내 눈의 들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나의 말이 사랑이 담긴 비판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비난인지 이번 한 주간 나의 말을 점검해 봅시다.
* 오늘 함께 묵상할 찬양은 '믿음은 행함으로'입니다. (밀알두레학교 3학년 상우반 친구들의 작품)
https://youtu.be/V9Lee4XJgxw?si=0xOfGSf9eVQ7KoHt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자 어떤 사람일까요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닌 실천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자 어떤 사람일까요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 내미는 사람
하나님께 인정받은 의로운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싶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없어요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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