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 설교]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10) - 행위와 믿음" (갈 2:16)

소리유리 2025. 11. 26. 16:15
728x90
반응형

오늘도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 중심으로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입니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주님을 몰랐지만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 불신자도 죽어서 지옥에 가나요?

 

책에서 언급하는 주제들은 계속해서 어렵고 논란이 되는 주제들입니다.   

오늘 내용도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질문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같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 불신자'의 구원문제입니다. 

물론 두 가지 경우에 다 부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두 경우의 중요한 질문은 '죽어서 지옥에 가나요?'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문제' 덧붙여서 '타인' 즉 다른 사람의 천국과 지옥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저 사람, 이 사람 혹 이런 경우, 저런 경우에 대해 어떻게 결정될지 궁금해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 불신자'의 경우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기준이 모호합니다.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에 대한 기준입니다. 

 

어느 정도 해야 착하다고 할까요?

또한 선한 일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모범적'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모범적'이라는 말은 '본받아 배우거나 따를 만한 것'을 말합니다.  

본받아 배우거나 따를 만한 것에는 어떤 것들, 어느 정도 수준의 것들이 있을까요?

기준을 세우기 애매합니다. 

 물론 우리끼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하면 착하고 선한 일이며 모범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착한 일, 선한 일, 모범적인 일에 상을 준다면 어떤 기준에 따라 등수를 정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일들은 상대적입니다.

어떤 행동, 어떤 사람에 비해 착하고 선하고 모범적이지만 또 다른 행동, 다른 사람에 비해선 평범합니다.

 

죄에 대한 기준은 '죄의 종류'가 아니라 '죄의 유무'입니다. 

그렇다면 '착함, 선행, 모범적'의 기준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특히 구원과 연관해서 억지로라도 기준을 세운다면 말입니다. 

즉 오늘 질문인 '지옥에 가나요?'와 연관 지어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얼마나 착하고, 얼마만큼의 선한 일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 모범적으로 살아야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나요?'

앞에서 '억지로라도'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굳이, 억지로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얼마만큼, 어느 정도'는 아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100%입니다.

완전무결한 착함과 선입니다.

아주 작은 아니 0.0000000001%의 흠도 없는 완벽한 모범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을 성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입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착하고, 선하고, 모범적인 사람'을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맞는 기준의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어서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정말 놀라울 만큼 착하고 선하고 모범적으로 산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죄인의 기준은 죄의 종류를 생각하며 따질 것이 아니라 내 죄가 다른 이에 비해 아주 정말 조금의 죄가 있다고 해도 죄가 있는 '죄인'임을 성경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도 다시 보겠습니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착하고 선하고 모범적으로 살아감으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닙니다. 

의롭게 되는 것, 즉 의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아무리 착하고 선하게 살고, 타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도 의인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함'이란 말은 그리스도가 이룬 '의'를 우리의 '의'로 여겨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완벽한 의는 오직 예수님만 가능하고 그것을 이루십니다. 

 

죄의 유무로 지옥이 결정됩니다. 

죄의 유무는 '의인이냐? 죄인이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일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일의 결과를 내 것으로 주셨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으로 산 불신자'의 구원문제는 '불신자'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무리 해도 부족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불신자에서 벗어나는 것 즉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같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의 문제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위인들을 지옥에 보내기엔 뭔가 꺼림칙하고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천국에 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위인뿐만 아니라 복음이 전달되기 전의 선조들도 포함되어 생각할 문제입니다. 

 

좀 전에 간단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답은 아주 간단하지만 우리가 간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판정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어떻게 판정하실지는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은 이것입니다. 

구원의 유무를 우리가,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위인이나 조상들에 대해 구원을 받았다, 못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해하는 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교역사에 있어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구글 제미나이(AI)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공식적인 개신교 선교사(언더우드, 아펜젤러 등)가 입국하기 이전에도 성경책은 이미 존재했거나 한글로 번역되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사실입니다."

 

1885년은 공식 선교사 입국 시점입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가 조선인 무역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심양에서 한글 성경 번역 및 인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882년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요안내복음젼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성경들은 압록강을 넘어 국내로 비밀리에 유입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복음이 전달되지 않은 나라'로 당연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미 들어와 있는 그것도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또는 복음이 공식적으로 전달되기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이순신 장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원칙적으로 일반계시, 일반은총의 범주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말은 무척 어렵습니다. 

구원은 특별계시, 특별은총에 의해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앞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언급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판결하십니다.

책 이야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려 하지 말고, 다만 그들의 겨우 희미한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에 따라 사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온전한 은총을 덕 입고 하나님의 환한 게시에 따라 삶으로써 구원을 확실히 받도록 열심히 전도할 따름이다."

 

이순신, 세 종대왕과 같은 선조들에 대한 구원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판결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할 일은 그때에 비해 명확한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것입니다.

덧붙여서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이순신 같은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는 하나님께서 의롭고 자비롭게 심판하시되, 그들의 겨우 일반계시와 은총에만 의지하여 살았던 것을 감안하여 복음을 아는 우리보다는 더 너그럽게 심판하시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초점을 조금만 흐리면 오해할 소지가 있는 내용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이렇게 합니다.

 

'더 너그럽게 심판하시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상식적인 답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들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린 문제입니다. 

 

혹 한국의 성경전달 역사처럼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는데, 그리스도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속속들이 그 사정을 모릅니다. 

그래서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 의문이 생길 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이라는 말은 일반 상식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상식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기에 할 수 있는 상식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의 구원이며, 내가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유사한 질문을 받을 때에 답을 이렇게 합니다. 

 

'정말로 궁금하면 나중에 하늘나라 올라가서 확인해 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답입니다. 

호기심은 그저 호기심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에 감격했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

묵상 & 기도 (교재에 있는 적용과 기도를 이곳에 올립니다)

1.  오늘 주제를 통해 내 주변의 다른 누구의 구원에 앞서 나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2.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말씀을 묵상하고 이해하여 믿음으로 받는 '의롭다 함'으로 '의로움에 이르는 의인'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됩시다. 

 

* 오늘 주제와 관련된 노래를 감상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히즈윌  '유일한 길 예수'입니다.   

 

https://youtu.be/LBN1Xc4duGk?si=ctIAIGlj0rU3LhZN

 

 

하늘과 땅을 이어주신 분 생명으로 길을 내셨네
보혈 흘리신 그 길을 따라 우린 이곳에 서있네

값없이 주신 구원의 길을 우린 믿음으로 걸어가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예수는 진리의 길 예수는 생명의 길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길 예수
우릴 죄에서 건지시고 하늘 문을 열어주셨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릴 인도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