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책 중심으로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책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십일조를 꼭 출석하는 교회에 해야 하나요? 어려운 사람이나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도와주면 안 되나요? 성경적인 십일조는 무엇인가요?"
오늘 주제도 지난주에 이어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헌금에 대한 설교는 교회에서 자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십일조에 대한 설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통상적 예배가 아닌 부흥회를 통해 헌금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부흥사가 헌금을 강하게 설교하고 성도들은 부흥회 때에 특별 헌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리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닙니다.
또한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있을 때, 교회에 빚이 많을 때에 설교 시간에 헌금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성도들 중에 강조가 아닌 강요로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반발로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만큼 헌금은 아주 예민한 주제입니다.
오늘 예민한 주제인 헌금 그것도 십일조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는 땅을 배분받지 못하고 성전을 섬기는 일을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위해 주로 드려졌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비해 구약에서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월등하게 많이 나옵니다.
현대 교회에 있어 십일조는 교역자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복음 선포와 목양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또한 교회 사역을 발전시키고 구제와 선교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십일조는 좋은 신앙 훈련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약에서 언급하는 3번의 십일조에 대한 구절 중에 한 구절입니다.
수요일은 민감한 주제로 설교하지만 신학적 접근이 아닌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에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책을 통해 나온 질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십일조를 꼭 출석하는 교회에 해야 하나요? 어려운 사람이나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도와주면 안 되나요? 성경적인 십일조는 무엇인가요?"
첫 질문이 '십일조를 꼭 출석하는 교회에 해야 하나요?'입니다.
질문에 앞서 왜 이런 질문이 나올까요?
먼저 전제는 십일조를 하는 경우입니다.
십일조를 하지만 고민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첫 번째 내가 아는 교회가 힘들어서 그 교회에 십일조 하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 내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드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출석하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이어집니다.
'어려운 사람이나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도와주면 안 되나요?'
내가 돕고 싶은 사람이나 교회가 있다는 것과 함께 교회가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아는 사람, 교회를 출석하는 교회가 알지 못함도 있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기도 합니다.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불만은 헌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이 자리에서 잠시 이야기할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헌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당회나 담임목사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내가 아는 사람, 교회에 헌금을 드리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교회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는 '목적 헌금'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출석 교회에 헌금을 드리지만 그 목적을 밝혀서 내가 아는 그 사람, 교회에 쓰일 수 있도록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헌금이 제대로 사용되는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좋은 방법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목적 헌금'을 교회에 두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적대로 헌금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십일조는 액수가 크기 때문에 더더욱 고민하게 됩니다.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십일조도 이중사랑계명에 비추어 이해하고 행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의 교회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만이 아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넉넉하면, 십일조의 일부를 아직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다른 교회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통해 보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다른 교회에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돈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 어려운 교회를 돕는 것은 성경적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닙니다.
이는 소유권, 청지기에 대한 생각이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헌금에 관련하여 많이 알려진 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입니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인색함, 억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아끼고,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을 많은 성도들이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 구절을 비그리스도인들은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돈만 좋아해'라고 말입니다.
모르고 보면 오해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초점은 '소유권'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물에 소유권을 두고 그 소유권을 서로 인정해 줍니다.
소유가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누구 것인가 싸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말 내 것들이 내 것일까?
그 원주인은 누구일까?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뻔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원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노력?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요?
생각하고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고?
그럴 수 있는 그 몸은 어디서 났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그 이성은 누가 준 것인가요?
내가 만약에 로봇을 만들고 일을 시킨다면 그 로봇이 하는 그 모든 일의 소득은 내가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고요? 내가 로봇의 주인이니까요.
내가 로봇을 만들었고 바로 내 소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봇과 인간을 비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자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에서 비슷합니다.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환경도 하나님 것입니다.
소유권을 따진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장 하나님의 것을 찾으시려고 법정에서 다툰다면 우리는 100%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만물을 내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땅, 아파트, 자동차, 스마트폰, 통장 등 내 것이라 주장하는 것들...
다 그것을 만드는 원재료는 다 자연만물에서 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에게서 나옵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용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청지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소유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개념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소유권을 들이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하면 그냥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당연히 십일조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기준에서 어떻게 쓰임 받는 것이 가장 좋을까?"고민해야 합니다.
헌금은 언제나 '하나님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라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입니다.
내 소유를 내가 마음껏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내가 정한 어떤 사람, 어떤 교회에 헌금하고 내가 생색내는 것은 결코 해선 안 될 일입니다.
도리어 내게 맡겨 주신 것을 잘 사용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할 기준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이중사랑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온전히 헌금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기준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청지기로 주인의 뜻을 졸졸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 아래 헌금이 사용되는 것이고 나도 이에 따라 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사실문제는 교회에 더 많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많이 기도하시고 내부에서 많이 개혁을 일으키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책에서 마무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교회들이 내부의 경비로 헌금의 대부분을 쓰고 때로는 심지어 사치스러운 일들에 낭비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주위에 가난하고 병들고 핍박받는 이웃들을 헌신적으로, 전문적으로 돕는 선교단체나 자선단체들에 십일조를 나누어 바치는 것도 필요하다"
맞는 말입니다.
공감합니다.
하지만 앞에 전제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것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제 살펴볼까요?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많은 교회의 중직자들, 십일조를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더 눈여겨봐야 할 말씀입니다.
굳이 의미를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십일조를 온전히 사용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헌금,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생각하고 적용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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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기도 (교재에 있는 적용과 기도를 이곳에 올립니다)
1. 물질, 돈에 대한 소유권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까? 내가 청지기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기억하고 청지기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시다.
2. 오늘 본문을 한 주간 암송해 봅시다. 그리고 날마다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오늘 주제와 관련된 노래를 감상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옹기장이 '나의 모습 나의 소유'입니다.
https://youtu.be/njMfiYKlTFM?si=-TTYkRY2gRfcsG4u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주님 앞에 모두 드립니다
모든 아픔 모든 기쁨 내 모든 눈물 받아주소서
어제 일과 내일 일도 꿈과 희망 모두 드립니다
모든 소망 모든 계획 내 손과 마음 받아주소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 주소서
우리 가진 이 모든 것들을 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었네
몸 밖에 드릴 게 없으니 내 삶을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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