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라!"
아침 산책을 한다.
날씨는 좋다.
공기도 맑고 기온도 딱 좋다.
산책 중에 지난번 담임 목사로부터 상처받은 후배와 통화를 한다.
카톡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전화로 듣는다.
그리고 똑같은 대답을 해준다.
'나와라'
후배는 어려서부터 다녔던 교회라 고민한다.
나도 보통 교회 옮기라는 말은 잘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사람관계의 어려움...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기 친 사람이 같은 교회 다녀도 교회 옮기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담임 목사와 관계가 틀어지면 다르다.
그것도 그냥 서운하거나 다른 감정적 문제가 아닌 비성경적인 언행, 가르침, 설교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옮겨야 한다.
아니 교회가 아닌 '그곳'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참고 견디다 보면 해결되기보다는 본인이 망가진다.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된다.
더 늦기 전에, 더 깊은 상처를 받기 전에 출애굽 하듯이 신속하게 탈출해야 한다.
이상한 교회들이 많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 있다.
자끄 엘륄의 '뒤틀려진 기독교'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래된 기억으로 저자가 현재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모든 교회를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교회를 교회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냥 '그곳'이다.
그리고 탈출해야 할 '그곳'이다.
'그곳'에서 일들을 경험하고 '그곳'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뿐 아니라 '목사'가 아닌 '그 사람'도 많다.
새벽기도 나오면 건강하고, 예배 빠지지 않으면 집안에 근심걱정이 없다는 말을 하는 그 사람!
많은 교회는 순종을 미덕으로 이야기한다.
무조건 따르라고 한다.
아니 그것을 믿음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해도 되니까 계속한다'
편하게 대화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설득에 있어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강한 힘은 없다.
내 이야기를 잘 아는 후배이기에 '그곳', '그 사람'에게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잘 마무리하고 나오라고 몇 번씩이나 말한다.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교회, 목사'에서 '그곳, 그 사람'으로 된 이상 방법은 없다.
주변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본다.
아니 '그곳, 그 사람' 때문에 '그곳'을 떠나고 '교회'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른 교회에서 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배의 고민을 듣은 이상 종종 전화로 상담해 줘야겠다.
'그곳'이 아닌 '교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