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사사(11) 삼손(1) - 나실인 삼손" (삿 11:29~33)
11월 첫 주일입니다.
다음 주부터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글이 아닌 말로 설교합니다.
가능하면 유튜브를 통해 예배 실시간 영상을 올리고, 설교만 따로 편집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오늘은 다시 사사기로 돌아와 '삼손'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 아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삼손은 알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삼손을 헤라클레스와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신화 같은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그저 머리를 풀어헤친 힘이 센 사람의 이야기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삼손을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사 입다가 죽은 후에 세 명의 소사사가 등장합니다.
입산, 엘론, 압돈이라는 사사입니다.
그들의 행적은 아주 짧게 기록됩니다.
입산은 아들 30과 딸 30을 두었고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을 보냈고 또한 여자 30을 타국에서 데려왔습니다.
아마도 정략결혼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 썩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다음 등장하는 엘론이라는 사사는 소사사 중에서 가장 긴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별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지막 소사사 압돈은 아들 40, 손자 30이 있었고 어린 나귀 70 필을 탔다고 합니다.
아주 부유한 사사입니다.
소사사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사로서 그 지역에서 유명해지고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들로 보입니다.
당시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모습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했을까를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1절에서 '다시'라는 말은 '계속'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계속 악을 행합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삼손'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 13장 21~25절입니다.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오늘 살펴볼 본문은 삼손 보다 삼손 부모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합니다.
마노아라는 단 지파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바로 삼손의 부모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먼저 알아둘 것은 삼손의 어머니 즉 마노아의 아내가 불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잉태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3절입니다.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 부분을 보면 언뜻 생각나는 성경의 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인 한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음으로 인해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은 그를 계속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서원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은 한나의 입에서 먼저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등장하는 마노아의 아내는 자신이 잉태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도가 없습니다.
자녀를 기다리긴 했겠지만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하나님께 울부짖는 그러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마치 지금의 이스라엘 상황과 비슷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고 구원을 받길 바라겠지만 하나님께 울부짖고 찾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마노아의 아내 즉 삼손의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부르짖는 것조차 하지 않는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듯한 이스라엘의 모습!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는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먼저 직접 언급하시고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에게 잉태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저 아이를 주겠다가 아니라 그 아이가 아주 특별한 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5절입니다.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먼저 마노아의 아내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를 임신했다고 이러한 것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잉태할 아이가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에 이러한 음식 규정이 지시된 것입니다.
또한 이어서 태어날 아들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나실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실인인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기 할 것을 말씀합니다.
나실인에 대한 규정은 민수기 6장 2절부터 보면 나와 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삭도를 절대로 머리에 대지 말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자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그 나실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하게도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삼손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재미있는 것은 나실인으로서 삼손이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삼손이 결국 나실인으로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입니다.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 삼손.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살펴보겠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녀는 마노아에게 가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실 나실인의 맹세는 남편의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마노아는 하나님께 이러한 기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기 30장 10~16절을 살펴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노아에게 응답하십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이 나실인으로 삼손을 주신 것을 들으며 그대로 행할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마노아는 이름을 묻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묘’라고 말씀을 합니다.
기묘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해를 넘어서는’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손을 태어납니다.
그 이름을 ‘삼손’ 즉 ‘작은 태양’ 혹은 ‘태양처럼 빛나는’이라고 짓습니다.
오늘 본문 24, 25절을 보겠습니다.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삼손의 등장입니다.
나실인 삼손!
아무도 그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잉태치 못한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아들을 주실뿐만 아니라 그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나실인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리고 삼손이 자라나자 그에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참으로 멋진 나실인 삼손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출생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를 선택하시고 하나님께 구별되어 자신을 드린 자로 삼아주시고, 복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게 한 사람!
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같은 내용을 좀 전에 몇 번 반복했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시고, 나에게 복을 주시고,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나실인 삼손!
그의 등장은 아주 화려하고 멋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그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더 놀랍고 대단합니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드시기 위해 보여주신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을 대단하게 보지만 그 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바로 '나'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 자녀인 나!
특별하게 선택된 사람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 오실 때까지 나실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제 생각할 것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더 살펴보며 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삼손의 다음 이야기는 수요일 사도신경이 끝나면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니 앞으로도 나는 삼손에 못지않은 정말로 더 특별한 사람이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