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수요설교] "사도신경(8) -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후 5:10)

소리유리 2024. 10. 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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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 주 수요일입니다.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선선해진 날씨에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의 신앙도 적극성을 가졌으면 합니다.

 

오늘도 사도신경을 살펴봅니다. 

복습으로 시작해 볼까요?

첫 시간에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 이야기,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네 번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여섯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일곱 번째 시간은 예수님의 승천과 우편에 앉아계심을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 시간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살펴볼 사도신경입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경본문은 고린도후서 5장 10절입니다.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오늘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말씀드릴 것은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통해 현재 나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새 번역에서 '거기로부터'로 번역했습니다.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최후의 심판을 하시기 위해 재림하십니다. 

재림이라는 말은 당연히 초림이 앞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실 때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보는 재림과 심판은 항상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설교를 통해서도 재림과 심판에 대한 설교는 많지 않습니다. 

위기, 어려움, 핍박, 생명의 위험 그리고 전쟁 중에는 재림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평안 가운데 재림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입니다.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같이 다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심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죄, 죄인, 사망, 심판, 멸망, 지옥 등의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오늘의 신앙고백처럼 '심판하러 오시리라'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때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재림과 심판을 기억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신다는 표현만 300번이 넘게 등장합니다. 

성경에서는 재림과 심판을 이만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기 싫어도, 듣기 싫어도 반드시 꼭 강조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고백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재림과 심판'에 대한 나의 모습, 태도를 살펴보려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8절입니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보면 어렵습니다. 

그리고 잠시 살펴볼 누가복음 16장 1~8절도 무척 어려운 본문입니다. 
‘존 라일’이라는 신학자는 ‘이 본문은 어려운 말씀이다. 거기에는 어쩌면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풀리지 않을 매듭이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자세한 설명과 설교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재림과 심판'에 관련해 간략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청지기가 있습니다. 

주인이 소문을 듣고 청지기를 불러 혼냅니다. 

그리고 앞으로 청지기 직무를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청지기는 큰 일 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이다음 부분은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 몇 번씩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5절, 레위기 25장 36절, 신명기 15장 8절, 23장 19절 등...

대표적으로 출애굽기 22장 25절을 보겠습니다.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즉 동족들에게는 돈이나 음식 혹은 그밖에 이자를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고리대금을 금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고리대금업자를 가리켜 강도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법을 점점 인간의 편에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러 실행 규정들을 제정하고 변형시킵니다. 

 

예를 들어 부자들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청지기를 임명합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권한을 대행받습니다. 

그리고 고리대금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주인이 아닌 청지기가 협상에 나갑니다. 

 

주인은 항상 높은 이익을 얻어낼 수 있도록 청지기에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러한 고리대금문제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 일이 커지면 주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청지기가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되는 것이 그 당시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아주 두터운 신임을 받습니다. 

주인 재산을 통제할 뿐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인을 대변하고 채무자들을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무자들은 청지기가 설정한 규정들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모든 관리를 청지기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청지기가 무능력, 나태, 불성실하면 주인은 청지기를 소환하여 결산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해고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미리 알아두어야 할 재미있는 그 당시 배경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용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16장 5~7절입니다.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빌려간 양을 줄여 증서에 적게 합니다.

기름 백 말을 빌린 자에게는 오십이라 쓰라고 하고 밀 100석을 빌려간 사람에게는 80이라고 적으라고 합니다. 

당시 밀, 기름,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는 돈은 원금에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계산을 많이 하지만 이렇습니다. 
내가 천만 원을 빌리고 일 년에 이자로 100만 원을 주기로 했다면 나는 1100만 원을 빌렸다고 증서를 쓰는 것입니다.

혹은 증서에는 천만 원을 빌렸다고 적으면서 실제로 돈은 900만 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밀을 빌리게 되는 경우 이율은 20%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가격 파동과 상품가지 하락을 대비하여 보험금조로 5%가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감람유라는 기름에 있어서는 80%의 이율에 20%의 보험금이 추가되어 총 100%가 되었습니다.

감람유는 매년 수확 예상이 어렵고, 해마다 그 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밀은 80석을 빌린다고 하면, 80에 대한 이율 25% 즉 20석을 80석에 추가 계산합니다.

즉 80석을 빌리면서 증서에는 100석을 빌렸다고 적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 말한 기름, 감람유를 50말 빌린다면 50에 대한 이율 100% 즉 50말을 추가하여 증서에는 100말을 빌린다고 적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청지기는 빚을 줄여줍니다.

기름은 반을 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실제로 빌린 양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본래 50말을 빌린 것이고 이자가 50말이라는 말이죠. 
청지기는 백 말의 기름을 빌린 자에게 고리를 뺀 실제로 주인에게 빌린 양을 적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본래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밀 백성을 빌린 자에게는 밀 80석이라고 적게 합니다. 

이 또한 앞에서 계산했듯이 이자를 뺀 실제로 빌린 양입니다. 

빌린 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 증서를 썼을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빌린 양을 적으면서 말이죠. 

즉 고리채가 없어지고 자신이 실제로 빌린 양을 적은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게 된 배경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잘리기 전에 채무자들에게 호의와 인자, 자비를 베풂으로서 미래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주인은 칭찬합니다.

8절입니다.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청지기에 대해 '옳지 않은'이라고 표현하지만 지혜 있게 일을 해서 칭찬합니다.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칭찬합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분석해 보면 첫째로 옳지 않은 청지기가 채무자들에게 자신의 자비와 인자함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채무자들의 편에서 오는 좋지 못한 불평을 제거함으로 후임자에 대한 길을 좋게 하였습니다.

셋째로 고리채를 제거함으로 주인으로 하여금 찬사를 받도록 함과 동시에 고리채를 받지 않는 경건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으로 행사하게끔 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미래를 위해 주인의 돈을 훔치거나 채무자들의 고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범죄가 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고 법적으로 정당한 범위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최대한 준비하고 예비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칭찬의 말을 했다면 청지기는 분명히 주인을 가장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로 부각되도록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전에 했던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여전히 ‘옳지 못한 청지기’즉 ‘불의한 청지기’로 불려지지만 그는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였고 주인의 평판을 높임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이 본문은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함을 말씀하는 본문입니다. 

또한 앞으로 닥칠 일을 지혜롭게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을 사용해 미래를 준비합니다. 

 

굳이 이 본문으로 '재림과 심판'의 우리들의 자세로 예를 드는 것은 이 청지기가 '옳지 않은'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는 닥칠 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옳지 않은 청지기'가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는 자신의 미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주인의 채무자들로부터 정직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이 일은 주인에게도 좋은 영향 즉 채무자들이 주인이 인자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로 생각하게 하는 영향을 주게 했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예비하는 이 '옳지 않은' 청지기는 주인의 칭찬도 더불어 받게 되었습니다. 

 

청지기가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옳지 않은'이 청지기도 앞으로 닥칠 일을 예비하고 준비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도 이렇게 지혜롭게 준비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나는 어떤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을 보면 열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 이야기입니다. 

기름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다섯 명은 준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미련한 처녀와 슬기 있는 즉 지혜로운 처녀로 표현합니다. 

지혜로운 5명의 처녀들은 미리 준비합니다. 

왜?

마태복음 25장 13절입니다.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고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든지 그날과 그때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것은 미리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있는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도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재림과 심판을 기억하고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10절.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 심판을 생각하며 늘 깨어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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