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작

"무제 5 - 염씨"

소리유리 2024. 2. 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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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가 오늘도 자기중심의 일방적 이야기를 당당하게 한다. 

불공정의 정당성을 선포한다. 

올바른 거짓을 말한다.

조용히 시끄럽게 말한다. 

소문을 사실로 말하며 무에서 유로의 창조적 이야기를 마구 토해낸다. 

 

'장'씨들과 '부'씨들은 의아해하며 추종한다. 

'지'씨는 내용을 몰라도 열심히 옆에서 손뼉 친다. 

이제 '제'씨도 '달'씨도 없다. 

처음에 말한 어떤 '부인'도 없다. 

천씨는 본래 거침이 없었지만 더 없어졌다. 

연륜이 더하면서 천씨는 이제 스스로 길과 진리가 되었다. 

 

오늘도 '염'씨는 화가 가득한 상태다. 

천씨 때문이다.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지만 화가 턱밑까지 가득 찼다. 

툭치면 용암이 분출하듯이 터질 것 같다.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저 아내에게 소리 지를 뿐이다. 

 

염씨가 요즘 유일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세뇌시키는 것이다. 

'천씨는 본래 그런 사람이야'

'천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천씨가 본래, 원래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알았잖아!'

 

열심히 세뇌시켜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강도가 점점 세지는 천씨! 

방법이 없다.

답답하다. 

 

장씨나 부씨들이 이상하다.

의아해하면서 왜 추종할까? 

왜 가만히 있을까?

진짜 천씨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까?

 

염씨는 지난날들을 생각해 본다. 

천씨가 자신에게 했던 여러 가지 말과 행동들!

염씨는 천씨 때문에 얼굴을 붉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천씨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배려적 말들을 쏟아낸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 따위는 없다.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 천씨의 특기다.

굳이 혀를 제어하지 않는다. 

천씨의 말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듣는 이들이 어떻게든 좋은 것을 뽑아내야 한다. 

개떡이 아니라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염씨도 수없이 당했다. 

천씨는 명령하기를 좋아했다. 

그 명령은 듣는 이의 기분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염씨는 당했던 일을 생각하며 치를 떤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천씨는 염씨의 아내에게도 사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묻곤 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쌓였던 것이 점점 광폭해지는 천씨의 요즘 행태에 염씨는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천씨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은 맞춰 움직여야 한다.  

만약 불만이 있어 얼굴을 붉히거나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 사람 잘못이다. 

그 말에 속상한 사람이 속 좁은 사람이 된다. 

다른 의견은 그냥 말하면 안 된다. 

그것은 그냥 불법이다.  

천씨 앞에서 가면을 써야 된다.

 

염씨는 지금까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다. 

가면을 쓰고 천씨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아니다. 

참기 힘들다. 참아선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초조해진다.  

염씨는 제자리를 돌며 고민에 빠진다. 

 

마침 '안'씨에게 전화가 온다. 

이번 천씨 식사모임에 나오라고 한다. 

불편하다. 싫다.

나가기 싫다. 진짜 싫다. 

하지만 안씨와의 관계도 있다. 

 

천씨 때문이 아니라 안씨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해 본다.  

그래! 이번이 좋은 기회다. 

이번에 가서 마무리하고 끝내자!

 

염씨는 천씨를 볼 것이 걱정이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안심이 된다. 

억지웃음의 가면을 쓰고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순종하는 척하며 얼굴을 마주치지 말자고 결심한다. 

문득 염씨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씁쓸해진다. 

 

그래도 좋은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하루만 견디면 천씨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만 생각하고 그날 하루만 잘 견디자고 혼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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