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

"하얀 거짓말 & 나의 계획? 하나님의 계획?"

소리유리 2024. 1. 2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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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집안에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곤란한 전화들이 온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는 내게 미리 답을 정해주셨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금 자리에 없다.
시키는 대로 했다.

거짓말이다.
당시 어리고 아버지가 시키는 것을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생각했다.
핑계다. 
어쩔 수 없지만 거짓말이다. 
부득이하지만 죄다.

하얀 거짓말이란 말을 쓴다.
성경적으로 라합의 예를 들어 말한다.
이스라엘 정탐꾼 2명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
라합은 그냥 거짓말이 아니라 하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다.

또한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 야곱의 속임수 등을 이야기하며 하얀 거짓말을 정당화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간 거짓말은 나쁜 거짓말이지만 하얀 거짓말은 선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이상한 정의가 만들어졌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와 도덕이 생긴다.
절대적 기준은 없다.
가장 괜찮은 기준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었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현재의 도움 같지만 미래에 더 큰 화가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얀 거짓말은 없다.
선의? 선한? 
기준이 모호하다.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거짓말을 빨간 것과 하얀 것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그냥 거짓말이다.

성경에서는 거짓말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라합의 예는?
라합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주제가 아닐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없다.
특별한 이야기다.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더 복잡한 신학적 주제들이 담겨있다.
쉽게 거짓말의 찬반을 말하려는 본문이 결코 아니다.

거짓에 대한 명확한 구절은 여기에 있다. 
출애굽기 20장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대표적으로 구약, 신약에서 한 구절씩 예를 들었지만 거짓에 대한 말씀은 너무나 많다. 
이런 명확한 구절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른 내용을 열심히 찾는다.
마치 술과 담배의 문제에 있어서 성경적 근거를 찾는 것과 같다.
 
술과 담배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어디에 있어?
취하지 말라고 했지 마시지 말라고 했냐? 
담배는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다!  

... 마약의 많은 종류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거짓에 대한 말씀이 있음에도 다른 본문을 통해 빨강과 하얀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
'술과 담배'처럼 '거짓말'에 정당성 또는 합리화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사실 거짓말 자체보다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의 정당성을 갖고자 함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 계획을 들먹인다. 
거짓말, 속임수가 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순종, 순응하라는 말이다. 
어려운 말로 예정이라는 말을 써먹기도 한다. 
내가 하는 거짓말과 속임수도 하나님의 예정 아래 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있다.
결론적으로 불만 갖지 말고 그냥 따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이름 팔아 내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다.
시간 자체를 초월해 존재하시는 분이다. 
공간도 창조하셨다.
공간 자체를 초월해 어디에나 계신다.
이해가 되는가? 그냥 인정해야만 한다.
(이 부분은 좀 더 깊게 설교로 올릴 계획이다.)

함부로 하나님을 내가 다 아는 듯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물론 성경에 비추어 절대로 맞는 것은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분의 뜻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쉽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있지만 대부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 사고들이 발생한다. 
하나님이 모르셨을까? 하나님도 보시면서 깜짝 놀라실까?
아니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이성의 범주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 
... 어려운 이야기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간섭, 섭리 아래에 있는 것은 절대 진리다.
하지만 이 말을 내가 하는 거짓말, 속임수가 정당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일이 없으시고 뜻과 계획에서 벗어나 의외의 일이 발생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있다고 거짓말, 속임수를 받아들이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논리면 모든 죄는 없어진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예정된 것이라는 괴상망측한 논리가 생긴다. 
 
사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은 목사다.
많이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해야 한다.
다만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심각한 죄다.

우리나라는 목사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순종에 익숙하다.
특히 담임목사의 말은 절대적이다. 
이상하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목사가 말하면 따라야 한다. 
게다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야기하면 진리가 된다. 
그것이 거짓말과 속임수라 할지라도!
 
덧붙여 성경말씀을 사용한다. 
라합의 이야기, 기브온 거민의 이야기, 야곱의 이야기...
성경적이라는 말을 통해 혹 의심했던 성도들은 안심한다. 
순식간에 거짓과 속임수는 성경적이 된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
라합의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했고 두 가지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기브온 거민은 속임수를 쓰고 평생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된다.
야곱은 속임수를 쓰고 평생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야곱은 성화의 대표주자로 이야기한다.
그만큼 고생하고 변한 사람이다.
 
하얀 거짓말,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서 한 속임수...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거짓말과 속임수로 인한 고난과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도 아주 심한... 
험악한 벌을 받고 평생 고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짓말, 속임수를 쓰는 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얀 거짓말은 없다. 
그리고 나의 뜻과 계획을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는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자. 
하나님의 뜻, 계획을 이용하여 내 주장을 하지 말자. 
거짓과 속임수에 순종하라고 하지 말자. 
성경을 가르치려면 제대로 가르치자.
 
내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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