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

"설교자는 설교와 함께 선포된다"

소리유리 2024. 1. 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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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가장 신경 써야 할 힘들고 어려운 것은 '설교'다. 

물론 교회 운영, 성도관리, 재정 등의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수정 가능하고 반복 시행 및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설교는 한 번 선포되면 그것으로 끝난다. 

물론 다음 주에 오류, 실수를 광고할 수 있지만 설교자로서 아주 신중해야 할 일이다. 

처음부터 잘 준비하고 잘 선포되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연구하고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 뜻을 지금 사는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이제 어려운 것이 또 남아있다.

 

찾은 그 결론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고민해야 한다. 

설교의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할 것인가 궁금하게 만들어서 나중에 결론을 이야기할 것인가? 

그 외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집중하고 더 기억하게 해야 하고 은혜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전달하고 성도들이 어떻게 설교를 따라오게 만들고 생각하게 하느냐 늘 고민한다.  

설교하는 가운데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스스로 고민하고 찾게끔 해야 더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설교의 기획이라고 하고 프로그램을 짜듯이 설교도 기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기에 어떤 방식이 맞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참 좋은 말씀인데 전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 있다. 

목회자로서 그러면 절대 안 되지만 내 삶과 어긋날 때다. 

목회자가 아내와 자녀와 다툼이 있다면 가정에 대한 설교, 아내와 자녀에 대한 설교는 어렵다. 

전하고자 하는 설교가 나도 관계되어 있는 것이라면 얼굴에 웬만한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안 된다. 

 

물론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교자는 설교와 함께 선포된다.  

나중에 설교자의 모습 때문에 설교에 영향을 끼치고 교회, 기독교, 하나님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거짓을 행하면서 거짓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다. 

불의를 행하면서 불의를 행하지 말라고 할 수 없다. 

불공정을 선택하고 공정하게 살라고 할 수 없다. 

도둑질, 살인, 음란, 돈... 등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목회자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대부분 이것 때문이다.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설교는 좋은 말만 할 때 성도들은 실망한다. 

그래도 양심적인 설교자는 본인의 잘못에 대한 설교를 못한다. 

하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그렇지 못하다. 

 

설교자와 설교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책이 있다.

예배가 쇼가 되고 설교는 연기자의 대본이 된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대본이 다르듯이 설교자와 설교가 다르게 된다.  

 

설교자로 성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삶이 또한 중요하다.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설교자는 설교와 함께 선포된다.

 

설교자는 설교와 함께 선포된다!

 

목회자로, 설교자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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