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

"비성경적 교회운영"

소리유리 2024. 1. 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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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사모다. 
본인이 사모를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목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모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사모가 꿈인 사람도 있다. 
 
나는 목사지만 사모를 하고 싶거나 사모가 꿈인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목사와 결혼했기에 사모라고 불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모를 목표로 하는 것은 싫었다. 
사모이기에 앞서 아내를 원했다. 
 
사모라는 말은 스승의 부인, 존경하는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특별히 목사의 부인도 그렇게 부른다고 사전에 적혀있다. 
사모님으로 검색하면 좀 더 일반적인 설명이 적혀있다. 
스승의 부인, 남의 부인,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일반 사회에서 사모라는 말과 교회에서 사모라는 말은 많은 차이가 있다. 
사전적 정의는 일반 사회이다. 물론 목사의 부인이라고 콕 집어 말하고 있지만 오해가 있다. 
이는 사회에서의 오해가 아닌 교회에서의 오해다. 
 
한 마디로 사모를 직분으로 오해한다. 직분은 임명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붙여지는 호칭이 아니다. 
사회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오해다. 
 
사장의 부인을 회사에서 임명하지 않는다. 
교수의 부인도 학교에서 임명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들의 부인도 군대에서 임명하지 않는다. 
물론 목사의 사모도 교회에서 임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교회에서 임명한 것처럼 착각한다. 
 
착각한다는 말엔 직분에 따른 직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장의 부인에게 회사의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수의 부인에게 학교에서의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교회는 특수한 공동체로 사모에게 당연한 듯이 직무를 요구한다. 
 
교회에서 직분에 따른 직무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성도의 재능에 따라 직무의 적합성을 요구해야 한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개척교회 시에 모든 성도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특히 목사의 아내로서 개척교회 핵심역할을 감당한다.
이는 사모가 핵심이 아니라 핵심에 서는 사람 중에 사모도 있는 것이다. 
이는 개척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다.
목사의 아내로 재능 및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만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많아지면 전문적인 사역은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사모에게 성경공부, 기도회인도, 심방 및 전도 심지어 간단한 설교까지 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모가 신학을 전공하고 사역경험이 있다면 교회 사정상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맡기면 안 된다. 
 
사모의 가장 큰 역할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남편 목사의 가르침에 잘 따르는 본을 보이는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성도의 본을 목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본을 보이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특별한 직무가 아닌 목사의 아내로서의 성도의 본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요구한다. 
목사의 아내로서 교회 사역에 모든 것을 걸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올인하라고 한다. 
난 절대 반대한다. 
왜? 성경적이지 않다. 
 
올인하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일까?
성경의 인물 중에 아내가 앞에 나서서 사역한 경우가 있는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도리어 특별한 경우이다. 
보편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경인물은 아내의 역할이 기록되지 않는다. 
 
목사 아내의 가장 큰 역할은 가정을 돌보며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말과 행동, 실천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사모보다 목사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문제다.
목사가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 메시지가 살아있음을 목사의 가정이 보여야 한다.  
메시지만 좋고 목사 가정에 문제가 있고 사모가 메시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메신저를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사모로서가 아닌 청지기로서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사모의 직무가 꼭 목사와 연결된 직분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모에 앞서 한 사람에게 준 비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실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사모 역할을 강요하는 당회, 중직은 성경적 무지함에서 시작한다. 
이는 교회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장로교는 당회가 중심이며 당회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장로들로 구성된다. 
성경을 잘 아는 담임목사도 문제고 성경을 잘 모르는 장로들이 대다수라 또 문제다. 
 
교회를 성경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가르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그 가운데 나타난 오류가 사모에 대한 직분, 직무의 요구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다. 
하지만 더 많은 교회가 그렇다. 
 
교회의 가장 문제다. 
성경적으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지만 성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자기 주장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과 자기 소견에 옳은 것을 서로 주장한다. 
목소리 큰 사람 또는 나이가 많은 사람, 사회적 힘과 재력,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긴다. 
 
한 마디로 성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교회가 성경적이지 않다. 
한 마디로 비성경적 교회운영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교회가 이상하다고.
교인들도 이야기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하지만 정작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회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적 운영이 무엇인지 성경적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후에 받은 십계명, 규례, 율례는 자유를 얻은 이들에게 족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의 기준이 무엇인지, 자유인으로서 이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이제 성경적 기준이 필요하다. 
이는 교회의 중직들에게 더욱 그렇다. 
장로교는 당회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와 장로들에게 필수적 성경교육이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성경시험을 볼 때에 장로들은 고득점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중직들도 그렇다. 
장로들은 성도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준이 되어야 한다. 
가장 전문적으로 해야 할 사람은 목사지만 그다음으로 장로들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성도들 중에 성경 전문가는 장로들이 되어야 한다. 
성경전문가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교회에 성경전문가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교역자를 빼고 누가 남는가 생각해 보자. 
그 가운데 장로가 없다면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운영되는 교회다. 
성경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소견대로 할 수밖에 없다. 
 
사모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에서 깊은 이야기로 흘렀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회 중직들에게 간절히 말한다.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해 가길... 
그것을 위해 성경을,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에 최우선하고 최대한 힘쓰길... 
 
그래서...
말과 행동과 결정이 성경을 기준으로 한 하나님의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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